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전격적인 내각 전면개편은 개각의 시기가 갖는
의외성으로 국제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해임된 장관에는 총리는 물론 내무장관등 경제와는 관련이 없는
장관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어 옐친의 의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옐친은 이날 방영된 국영 TV를 통해 경제개혁을 가속화하고 오는 2000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내각을 전면적으로 개편한다고 발표
했다.

현 내각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을 전혀 개선하지 못했고 그동안 최대
현안이었던 밀린 연금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형식적으로는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내각개편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동안 추바이스 부총리와 넴초프 부총리 등은 경제회생 실패에
대한 여론의 강한 비난에 시달려 왔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번 내각해산은 국정장악에 대한 자신의 의욕을
"옐친식의 깜짝쇼"를 통해 다시한번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옐친 스스로도 시장경제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경제정책은 이미
결정된 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해 내각해임이 던질 내외의 충격을 감안하고
있음을 반증했다.

키리엔코 연료에너지 장관을 신임 총리서리로 임명한 것 역시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덜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키리엔코 총리서리는 그동안 넴초프 부총리와 호흡을 맞추어온 개혁론자며
나이가 35세에 불과한 러시아 신세대 경제관료중 선두주자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모양을 액면 그대로 곧이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러시아 정세에 밝은 일부 분석가들은 옐친이 머지않아 하원(국가듀마)을
해산하는 등으로 전면적인 정계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더군다나 옐친은 최근 수일동안 자신의 와병문제로 여론의 주목을 받아
왔던 터여서 이번 조치가 고도의 정치적인 노림수를 깔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날 체르노미르딘 총리를 해임한 것은 그가 지난 5년동안 옐친의
철저한 2인자였던데다 오는 2000년 대통령선거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는
데서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오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해임했다고 밝혔으나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인지는 직접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옐친의 의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넴초프 부총리의 해임 역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넴초프 부총리는 추바이스 부총리와 함께 러시아 시장경제 개혁의 견인차로
불려 왔고 신세대 경제각료의 선두주자였다.

옐친은 넴초프가 정부내에서 "다른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해 그가
새로 맡게될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 정세의 향방과 이번 내각전면경질의 속뜻은 옐친이 금명간 발표할
내각명단과 후속조치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러시아 증권시장이 내각해임 발표로 6%나 폭락한 것은 러시아 시장경제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모스크바=류미정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