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위기가 극적인 해결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서방 채권은행들이 30일 "뉴욕 회동"에서 상환만기 연장과 함께 신규 자금
지원에까지 합의함으로써 한국 금융기관들은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적어도 당분간 한국의 은행들은 하루하루 자금을 막지못해 피를 말리던
"하루살이"신세는 면했으며 보다 여유를 갖고 차입 구조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이에따라 널뛰기를 지속했던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전망이다.

나아가 한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국제 자본시장에서의 신인도도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실 채권은행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한 한국의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이 5백70억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했음에도 사태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것이 이를 웅변해준다.

IMF의 구제금융 결정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었던 서방 채권은행들이
"대출빗장"을 열기로 한 데는 IMF와 각국 정부의 집요한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월가의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수차례나 불러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만이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임을 강력히 경고했다는 후문이다.

일본과 유럽 각국의 정부도 워싱턴과의 교감 아래 자국 은행들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IMF도 스탠리 피셔 부총재를 29일의 뉴욕 FRB회의에 파견해 한국의 금융
개혁 방향을 설명하고 서방은행들의 대한지원대열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이 "대출 해금"을 단행키로 한 결정적인 요인은 상업적인
이해득실을 고려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한국이 대통령 선거가 끝난뒤 발빠르게 금융개혁 조치를 내놓음에 따라
"목줄 죄기"로 노렸던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실물경제가 탄탄한 상황이므로 과도한 단기 외채로
촉발된 현재의 위기에서 건져낼 경우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뱅크 아메리카의 폴 도프먼 부회장은 29일 월 스트리트 저널
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며 그런 나라의 금융을
안정시키는 것은 우리 은행과 주주들의 장기적 이익에도 부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 은행들의 이번 결정이 한국계 금융기관 전반에 대한 대출
재개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과도한 불량 자산으로 인해 재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대출 회수를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없는" 일부 은행들의 몰락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또 이번 결정은 한국이 IMF와 합의한 경제개혁과 시장개방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어 상당한 고통이 수반되는 "개혁"을 본격적
으로 실천에 옮겨야 하게 됐다.

"공"이 다시 한국으로 건너 온 셈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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