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경영"은 천수를 다했고, 효율을 최고의 잣대로 삼는 "미국식
경영"이 세계 기업계를 천하통일하고 있다.

일본과 "일본식 경영의 수제자"로 꼽혀온 한국 기업들이 금융 재앙속에
휘청거리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승승장구가 계속되면서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8일자 1면 기사로 "미국식 경영"이 일본식 경영을
제치고 세계 기업계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80년대 후반 미국경제가 휘청거린 반면 일본 등 아시아 경제가 승승장구
했을 때 "미국 몰락의 조범"으로 "미국식 경영"을 손가락질했던 전문가들이
최근 앞장서서 미국의 경영모델에 대해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은 그동안 "물과 기름"만큼이나 상호 이질적인
내용으로 맞대결을 펴왔다.

인사관리 측면에서는 과감한 정리해고를 통한 신축적인 인력운용과 능력별
성과급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식 경영에 대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미덕으로
삼아온 일본식 경영이 극명한 대조를 이뤄왔다.

재무관리에서도 양자간의 차이는 뚜렷하다.

미국식 경영은 기업들이 증권시장에서의 주식 및 회사채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으로 필요자금의 대부분을 조달하고 있는데 비해 일본식 경영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에 대한 의존이 높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은행대출금
비율이 50%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1백50%, 말레이시아는 1백%에 달하고 있다.

반대로 채권발행액이 GDP에 대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이 1백10%인데 비해
일본은 75%에 불과하며 한국은 단 50%에 지나지 않는다.

주주의 경영감시기능에 관해서도 미.일 모델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미국식 모델은 소액 주주들이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매 회계연도 결산기
때마다 경영진의 당기 경영성과를 추궁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당장 수익이 가시화되기 힘든 장기적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고, 당기순익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게끔 돼 있다.

반면 일본식 경영은 소액 주주들의 발언권이 크지 않다.

대주주가 사실상 경영전권을 행사하도록 권한을 위임받고 있어서다.

따라서 당장 이익을 못내더라도 장기적으로 열매를 크게 맺을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대규모 투자를 과감히 진행해 왔다.

MIT 경영대학원의 레스터 서로 교수는 이와관련, 지난 92년 펴낸 화제작
"헤드 투 헤드"에서 "먼 장래를 내다보고 경영전략을 수립-진행하는 일본의
공동체 자본주의가 숲은 못보고 나무만 좇기에 급급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압도하고 있다"고 개탄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최근 일본과 한국의 "몰락"앞에서 설 땅을 잃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반성이다.

이에따라 한때 미국식 경영을 매도하기에 바빴던 전문가들이 최근 자신의
"학문적 경솔"을 자아비판하면서 "전향"을 시도하는 모습들도 부쩍 눈에
띄고있다.

지난 92년 "차가운 평화(Cild Peace)"라는 저서에서 "기업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자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온 일등공신"으로 일본과
독일의 금융제도를 찬양하고 미국식 경영을 비판했던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원장도 최근 자신의 "학문적 경솔"을 시인하고 미국식 경영의
상대적 우수성을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미국식 경영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당장의 재무기반을 무시하면서까지 "미래 환상"에 매달려 온 일본식 경영의
좌절앞에서 미국식 경영의 "안정성"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