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일궈낸 성공신화, 상속권을 둘러싼 일가의 내전, 재산을 노린
청부살인, 가문의 몰락....

영화줄거리로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가진 구치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파란만장한 첫 장을 열었다.

1922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마을의 귀퉁이에 한 청년이 조그만 가죽 말안장
가게를 냈다.

고급 호텔의 보이출신으로 상류층의 취향을 꿰뚫고 있던 그는 호화스럽고
튼튼한 제품으로 귀족들을 사로잡았다.

이 청년이 바로 구치의 창업자인 구치오 구치다.

이후 핸드백 구두 스카프 의류 액세서리등으로 품목을 늘려가며 구치는
토털 패션업체로 뻗어나갔다.

단돈 3만리라(약 1만8천원)로 출발한 구멍가게는 곧 로마 밀라노에 이어
파리 뉴욕 도쿄등 전세계에 판매망을 구축, 거대한 구치왕국을 이루게 된다.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등
굵직한 고객을 배경으로 구치는 50, 60년대 패션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53년 구치오 구치가 사망한 이후엔 장남 알도가 가업을 이어받아 왕국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러나 70년대들어 차남 로돌포가 사업에 뛰어들면서 형제간엔 반목이
시작됐다.

자손들에게 대물림된 재산다툼은 법정으로까지 번졌고 83년 로돌포의
아들 마우리치오가 삼촌일가를 밀어내고 그룹총수직을 차지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가업은 만신창이가 됐고 부채를 견디다 못해 바레인의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에 지분을 팔기 시작했다.

마우리치오 회장은 낯선 사업 파트너와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일으킨끝에
93년 나머지 지분마저 넘김으로써 구치에서 구치일가의 이름은 완전히
지워졌다.

구치를 인수한 인베스트코프는 기업 법률 고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도미니코 데 졸레를 최고 경영자로 선임했다.

또 미국의 최고 디자이너인 톰포드를 스카우트해 그룹 분위기를 완전히
쇄신하며 제2의 전성기를 이뤄냈고 95년 패션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구치 주식회사 시대를 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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