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Animation)시장은 월트디즈니사의 독무대였다.

최초의 만화영화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나온 이후 60년간 월트디즈니
는 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동안 도전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전자들은 몇편정도 만화영화를 만들어보고는 번번이 꼬리를 내려
버렸다.

월트디즈니의 빼어난 제작기법이나 폭발적인 마케팅 능력을 도저히 따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이처럼 단단한 디즈니의 아성에 20세기폭스사가 도전장을 던졌다.

20세기폭스는 지난 21일 만화영화 "아나스타시아(Anastasia)"를 출시,
디즈니에 대한 1차공격을 시작했다.

"여우(Fox)대 생쥐(Mouse)"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이 만화영화는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이 악당 "라스푸틴"
의 추격을 피해가며 자신이 러시아 로마노프왕조(1613~1917년)의 마지막
생존자임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용감한 여자주인공, 잘생긴 남자주인공, 흉칙하게 생긴 악당, 춤, 노래 등
전형적인 만화영화의 요소에다 빠른 스토리 전개, 화려한 배경화면 등을
가미해 어린이 관객과 성인 관객을 동시에 겨냥했다.

인기 여배우 맥 라이언과 오드리 햅번의 얼굴을 합성해 그려낸 주인공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은 또 다른 볼거리다.

20세기폭스는 자사의 96년 최대 히트작 "인디펜던스데이"의 마케팅 비용
보다 35%나 더 많은 비용을 이 만화영화에 쏟아붓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세기폭스는 아나스타시아에 이어 오는 99년 공상과학 만화영화 "플레닛
아이스"를 개봉, 2차공격을 감행한다는 구상이다.

대월트디즈니전의 선봉장은 빌 미케닉 만화영화부문 회장.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월트디즈니 출신이다.

월트디즈니에서 홈비디오와 해외유통부문을 담당하면서 만화영화 시장을
간접 경험했던 미케닉 회장은 지난 93년 폭스로 이적, 친정에 대한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미케닉 회장은 "4년동안 5천3백만달러(약5백20억원)를 들여 아나스타시아를
만들었다"며 "최고흥행기록을 경신할 만반의 준비가 됐다"고 자신감을 표시
했다.

20세기폭스가 만화영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시장이 말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상영된 월트디즈니의 "라이온 킹"이 대표적인 사례. 만화영화중
최고의 흥행수입을 올린 이 영화는 극장 입장료만 3억1천3백만달러(약 3천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포레스트 검프"의 수입과 맞먹는 액수다.

영화역사상 수입 랭킹 5위.

입장료 수입에다 비디오 대여, CD 판매, 영화 관련 상품 판매 등을 통한
수입을 합하면 10억달러를 넘는다는 것이 할리우드의 정설이다.

만화영화 한편으로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영화잡지인 필름드엔터테인먼트의 스미스 바니 기자는 "영화산업중 가장
많은 돈벌이가 되는 것이 만화영화"라며 "어떤 장르의 영화도 만화영화의
이익 잠재력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성을 위한 디즈니의 반격도 시작됐다.

디즈니는 오는 26일 어린이들의 우상인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플러버"를
출시한다.

이와함께 "작은 인어", "헤라클레스", "정글의 조지" 등 과거 히트작품을
11월중 잇달아 재개봉한다.

물량공세로 20세기폭스의 기를 초반전부터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월트디즈니 장편만화영화사의 로이 디즈니 회장은 "지금까지 라이벌들을
잘 물리쳐 왔다"며 "디즈니는 기꺼이 경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할리우드의 최대 관심거리는 과연 여우가 생쥐의 먹이를 얼마나 뺐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일단 여우의 야심작인 "아나스타시아"의 성공 여부를 지켜본뒤에나 단기
예측이 가능할 것같다.

<조성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