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통산업은 도태의 시대를 맞고 있는가.

중견슈퍼업체로 세계적인 유통기업을 꿈꾸어온 야오한재팬이 도산하면서
유통산업에 위기의식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일본유통업체들은 빌린 돈으로 점포를 세우고 그 점포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려 점포를 늘리는 방식으로 외형상 초고속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버블(거품)붕괴후 장기화되고 있는 소비부진으로 고속성장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고 과중한 금융부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심찮게 회자되는 "건설업 다음은 유통업"이란 얘기는 버블붕괴의 직격탄
을 맞았던 건설업체들에 이어 유통업체가 희생양이 되지 않으냐는 우려를
담고 있다.

유통업의 위기가 어느정도인가를 쉽게 확인해주는 것은 그동안 초고속
성장으로 전후 일본소매업을 리드해온 대표적인 유통부문인 슈퍼업의 부진
이다.

일본 최대슈퍼업체인 다이에는 97년도(2월 결산)에 5억엔의 경상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2조5천억엔규모에 이르고 있는 매출을 감안할 때 형편없는 수준이다.

수익률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이익과는 관계없이 지난 40년동안 매수.합병
으로 기업의 규모를 키워온 나카우치 이사오회장 특유의 경영스타일때문.

점포를 빌리기보다는 사들이는 형태로 사세확대에 온 힘을 쏟아온 것이다.

이로 인해 다이에의 부채는 자사의 6천6백억엔을 포함, 총 1조4천5백억엔에
이르고 있다.

금융기관이 다이에에 이처럼 거액을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카리스마적
존재인 나카우치회장의 장악력을 인정한 때문이다.

그러나 75세인 나카우치 회장이 후계체제구축에 실패할 경우 일순간에
금융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사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스코등 다른 업체들도 거의 마찬
가지다.

이가운데 가장 탄탄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이토요카도 조차도 지난 8월
중간결산결과 경상이익이 전년동기에 비해 4%나 줄어들었다.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금리부담이 가중될 경우 슈퍼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게 분명하다.

부채의 70%가 금리변동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 금리상승으로
다이에는 92억엔, 세이유는 86억엔, 마이컬은 66억엔을 추가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해외사업확대로 혜성처럼 나타났던 야오한그룹을 붕괴시킨 금융불안요인을
다른 업체들도 똑같이 안고 있는 셈이다.

야오한의 경우 홍콩진출 등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대량의 사채발행을
한 결과 97년도의 부채가 총자산의 73%인 1천6백89억엔으로 늘어났다.

소형소매업은 슈퍼업체에 비해 더욱 형편이 없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소비지출감소로 인해 타격을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8월말까지 소매업의 도산은 1천6백10건으로 전년도보다 83건(5.4%)
이 늘어났다.

이같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점포확대경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토요카도는 베이징 등에서의 슈퍼업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활용, 상하이
등 중국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금융기관들도 빅뱅에 대비한 불량채권처리를 위해
건설업에 이어 유통업에 대해서도 선별적인 자금지원을 할 움직임이다.

일본에서도 유통업의 앞날이 아주 험난한 것 같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