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경영과 오랜 증시침체의 예고된 결말"

일본의 금융가에서는 이번 산요증권의 파산원인을 이렇게 보고 있다.

산요가 버블기에 계열 비은행회사를 위해 과도한 채무보증을 선데다 장기간
의 증시침체로 수수료 수입마저 격감, 좌초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말 현재 산요의 재무구조는 자산 24억8천만 달러(2천9백76억엔)에
부채가 31억1천만달러(3천7백36억엔)로 부채가 자산보다도 6억3천만달러
초과한 상태다.

일본내 업계 7위인 산요증권이 이처럼 부실화된 것은 지난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의 거품기에 악성 채무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비은행권 자회사에
과도하게 출자하고 채무보증을 선 결과였다.

이에 산요증권은 그해 4월 구조조정계획을 세웠고 대장성과 일본은행은
9개 생보사를 앞세워 2백억엔의 "열후론"(일반채권에 비해 변제순위가 낮은
대신 금리가 높고 자기자본에 산입할 수 있는 융자)을 제공, 산요의
자주재건을 지원했다.

이후 생보사들은 올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열후론의 상환을 연장해 가며
산요의 회생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증시침체가 예상외로 장기화되면서 산요의 자구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산요지원의 핵심을 떠맡은 노무라증권이 총회꾼에
불법이익을 제공한 사건이 터지면서 공조체제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산요지원의 또다른 축이었던 도쿄미쓰비시은행에서도 구
미쓰비시계 임원들이 "산요지원은 합병전 도쿄은행의 사안"이라며 추가지원
에 반발하고 나섰다.

산요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국제증권과의 합병마저도 국제측이 막판에
거부쪽으로 돌아서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쯤되자 그동안 산요지원을 막후에서 주도해온 대장성도 마침내
두손을 들어버렸고 산요는 회사갱생법신청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요의 도산은 기본적으로 거품
경제기에 발생한 비생산적 부채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는 비단 산요만이
아니라 일본의 많은 금융업체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미스즈카 히로시 대장상도 기자회견에서 "산요의 도산은 계열사에 대한
무리한 출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해 이번 사태가 거품경영의 소산
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런 이유에서 일본금융계에서는 증권회사로는 2차대전후 처음인 산요증권
의 도산이 일본판 "빅 뱅"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