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들의 건강 상태는 어느 정도까지 공개돼야 하는가"

최근 로벡르토 고이주에타 코카콜라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한 것과 관련,
월가에서 상장기업들의 "공시대상"에 최고경영자들의 건강 상태도 포함되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공개돼야 하는지를 놓고 갑을론박이 벌어지고
있다.

코카콜라측은 고이주에타 회장이 지난달 폐암 진단을 받아 입원한 직후
이 사실을 상세히 공개하는 기민성을 보였다.

코카콜라는 그러나 "회장의 입원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후계 구도를 비롯한
경영 전반에 아무런 차질이 없게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조목조목 밝힘으로써 주가 관리에 성공했었다.

그러나 이처럼 총수의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밝히는 기업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AT&T는 로버트 앨런 회장이 오래전부터 심장병을 앓아 왔음에도 지난 2월
대수술을 받기 직전까지 이 사실에 대해 일절 함구해 왔었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 회사의 대변인은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투자자들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대꾸
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 증권법 규정이다.

미국의 증권-외환위원회는 기업들로 하여금 "회사의 명운에 영향을 미칠"
사건 등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를 공개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들의 건강 여부가 "회사의 명운"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결국 이 문제는 개별 회사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 총수들은 자신의 건강 문제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몹시 꺼리는게 상례로 돼 있다.

무슨 병치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내에서의 "권력"에 누수
현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 후계잘 지명하는 일에서까지 입김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일례로 케이블TV회사인 타임워너의 스티븐 로스 회장은 1년간 전립선 암과
투병한 끝에 지난 92년말 사망했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회사측은 "로스 회장은 업무를 잘 챙기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생명공학 회사인 셀프로사의 경우도 릭 머독 회장이 2년간 임파선 암을
앓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행사장등에서 그의 부재를 묻는 외부인들의 질문에
"잠시 병원에 갔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다 우연히 사실이 드러난 케이스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터넷 등 초고속 정보화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더 이상 총수들의 건강 이상을 숨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총수의 신변 문제를
공개하고, 비상 경영체제를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그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오히려 투자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코카콜라가 고이주에타 회장의 투병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거의 영향받지 않은 것은 물론 그의 사망 이후에도 별 소요없이 곧바로
후계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공개 경영" 덕분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