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버블붕괴기에 가격파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할인
유통업체들이 고사직전에 있다.

고가품의 소비위축을 몰고온 지난 4월의 소비세율 인상후에도 할인업체들의
실적향상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할인업체들은 경영전략의 핵심이었던 저가전략을 잇따라 수정하고
있다.

everyday low price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가격파괴를 선도해 왔던 다이에.

이 회사의 대표적인 할인업태 하이퍼마트는 작년에 적자를 본 뒤로 올초
이 간판을 내리면서 저가전략에서 벗어났다.

또 진열대에 표시해왔던 가격라벨을 떼고 good quality best price(양질의
적정가격)이란 문구로 교체했다.

나가우치 이사오 사장은 "아무리 사도 품질이 받쳐 주지 못하면 팔리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할인업체의 전략수정은 저가판매 라는 간판을 바꿔 거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상품전략도 함께 변하고 있다.

1만엔(약 7만원)짜리 양복 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아오야마상사의 매장엔
과거 전품목의 10%를 차지했던 1만엔짜리 이하의 저가품은 이제 거의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대신 3만엔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판매가격을 전면에 내걸었던 광고도 그 모습을 감춘지 오래다.

이 회사의 아오야마 회장은 "우리는 이제 디스카운트스토아(할인매장)가
아니다"라며 "소비자성향이 품질중시로 바뀌면서 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스키플레이트의 할인판매를 유명한 스포츠용품 할인업체인 빅토리아의 경우
양판점에서 전문점으로의 이미지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겨울부터 값싼 프라이빗브랜드(PB:자체기획상품)는 원칙적으로 판매
하지 않을 예정.

전성기때 전체상품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인기절정이었던 PB는 이제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유수 조사기관인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금년 1~8월동안 할인
유통업체의 부도액은 약 3백72억엔.

과거 최고였뎐 작년 한햇동안(3백80억엔)과 맞먹는다.

건수로도 전년동기의 20건보다 많은 23개사가 부도를 맞았다.

이외에도 풀하우스(부채 2백38억엔) 종합디스카운트스토아(부채 63억엔) 등
대형 할인업체들의 경영파탄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할인업태들의 이같은 고전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가격파괴를 통한 유통혁명으로 물가수준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부르짓던
할인업체들이 역사적 사명을 다한 것 같다.

< 장진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