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정부의 자동차시장 슈퍼 301조 발동으로 한참 떠들썩한 가운데
이번에는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미국횡포"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 정유업체인 토털사와 러시아의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사가 합작으로
이란에 정유공장을 짓기로 한데 대해 미국 의회가 제재조치를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국"인 이란과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들에 대해 무역보복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는 자국내 법률이 "제재 검토"의 근거다.

콧대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측에서 반발하고 나선 건 당연하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미국이 지구촌의 규범을 멋대로 정해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멍청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면박을 줬다.

머쓱해진 미국은 "제재조치"는 뒤로 미루고 "체면 복구"를 위해 프랑스
측과 막후 교섭에 비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한술 더 뜨고 있다.

최근 영국 러시아TV에 출연해 "러시아와 프랑스, 이란이(미국의 식민지가
아닌) 독립국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미국이 적국으로
상정하고 있는 이란과의 "동병상련"을 피력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자충수"로 코너에 몰리자 그동안 "온인자중"해왔던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대해 쌓인 감정을 잇달아 털어놓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최근의 동남아 통화위기에 대해 "얼간이같은
미국 환투기꾼들의 장난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퍼붓고 있는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2차대전 기간중 유태인들의 비밀예금을 불법적으로 동결 조치해 비난을
사고 있는 스위스조차 "우리나라가 미국의 강력한 금융 경쟁국가로 떠오르자
미국정부가 몇십년전 일을 들먹이며 딴지를 걸고 있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탈 냉전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자임하며 "지구촌 경찰"로 행세해
온 미국이 바로 그 까닭으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뭇매를 맞기 시작한 건
하나의 아이러니다.

"기회 균등"과 "민주주의"를 제1조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이 국가 이익이
걸린 국제 이슈에 대해서는 그 원칙과 상반되는 잣대를 휘둘러 온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일 성 싶다.

이학영 < 뉴욕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