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금융위기의 진원지 태국.

나라경제가 총제적인 파국에 직면해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태국 최대기업인 차롱 포크판드(CP)그룹의 다닌 체라바농(58)회장이
느끼는 위기감은 다소 남다르다.

다닌 회장은 "이번이 ''절호의 찬스''"라며 오히려 공격경영을 펼쳐 전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고 있다.

CP그룹은 식품 유통 화학 통신 등에서 2백여개 기업을 거느린 태국의
토착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은 80억달러.

각종 특혜와 연줄로 덩치를 키워온 기업(비즈니스위크지)으로 정평나 있다.

현재 정보통신 유통 화학 등 신규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핵심사업은
여전히 양계업을 비롯한 식품관련 사업이다.

농민들과 일반소비자들을 겨냥한 저가 생필품유통업도 주요사업이다.

최근들어 태국내 경제사정 악화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가 CP그룹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이런 사업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닌 회장은 의외로 침착하다.

그는 "지난 7월이후 바트화가치가 37%가량 하락한 것은 다른 기업들에
치명적일지 몰라도 CP그룹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고 "바트화의 평가절하
덕택에 닭 해산물 농산물 등의 수출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그룹위기설을 일축하고 있다.

그는 또 주요사업이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저가위주의 식품 및 유통사업은 불황에 처한 국민들의 소비패턴과 맞아
떨어져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고 주장이다.

로터스 슈퍼체인의 아울렛매장과 창고형 할인매장 시암마크로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닌 회장은 이번 위기를 식품관련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정보통신 화학
등으로 사업구조를 전면 개편할 수 있는 ''변신의 기회''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 계열사 텔레콤아시아의 경우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대규모 신규사업을 준비중이다.

5억달러를 투자, 올해안에 PCT(퍼스널 커뮤니케이션 텔레폰)네트워크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다닌회장에게 걱정거리가 없는게 아니다.

그의 최대 고민은 중국쪽에 있다.

CP그룹은 중국에 그동안 40억달러를 투자했지만 최근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토착기업들의 도전으로 경쟁은 그어느때보다 치열하다.

특히 의욕적으로 시작한 오토바이 사업은 현지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진출로 과잉생산 과당경쟁으로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 지방정부가 국산오토바이 구매자에게 세금혜택을 주는
정책까지 쓰고 있어 CP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무형의 자산이었던 중국과의 친분도 예전같지 않다.

그럼에도 다닌 회장은 중국에서의 승부를 자신한다.

포인트는 구조조정과 공격경영이다.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오토바이 사업의 경우 지난 7월 한달간 상하이
공장에서 8백명을 해고한데 이어 조만간 8백명을 더 줄일 예정이다.

오토바이 조립생산에서 엔진 등 부품으로 사업다각화도 고려중이다.

유통부문은 공세를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지난 여름 상하이 푸동지역에 슈퍼체인 로터스를 오픈했다.

개점 첫날 2만명의 고객이 몰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2,3호점도 조만간 낼 계획이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CP그룹의 케이스 스터디를 주도한 레이 골드버그
박사는 "통화위기에 처해있는 태국의 모든 기업들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하면서 "만약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CP그룹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각종 특혜와 연줄로 기업덩치를 키우고 무차별적인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는 CP그룹이 이번 동남아 금융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 장진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