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지역의 통화안정을 위해 국제기금을 창설하자는 물밑 구상이 갑자기
수면위로 부상하자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사회가 찬반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동남아의 통화위기를 계기로 아시아판 IMF(국제통화기금)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펀드"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태국과 일본등이 펀드창설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계획안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미츠즈카대장상이 IMF.IBRD(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린 홍콩
에서 22일 아시아펀드에 한국 중국 홍콩등도 가입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후 연내에 창설될 것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 본지 9월23일자 8면 참조 >

일본경제신문은 24일자에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부총리의 말을
인용해 "기금총액을 5백억~6백억달러로 하는 통화및 금융시장 안정 펀드가
연내에 창설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아시아판 IMF에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9개 회원국과 한국 일본
중국 등 12개국이 가입할 것이라고 일본경제신문은 덧붙였다.

태국의 타농 비다야재무장관은 아시아펀드가 시급하다며 안정기금을
장기적으로는 1천억달러규모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필리핀의 로베르토 드 오캄포 재무장관도 기자들에게 아시아 펀드가 절실한
형편이라며 일본과 태국측의 구상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동남아와 일본이 공개적으로 아시아 펀드를 집중 거론하기 시작하자 23일
IMF가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날 스탠리 피서 IMF수석이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IMF의 기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국제통화기구가 설립되는 것은 우려할 만할 일"이라며
아시아펀드 창설 움직임에 직격탄을 퍼부었다.

IMF는 동남아의 통화위기 상황을 감안해 최근 잠정위원회에서 45%의 증자를
결의했다.

또 오는12월에는 일본 도쿄에 아시아 지역을 통괄할 사무소를 개설키로
하는 등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반해 아시아펀드가 신설되면 아시아 최대 부국인 일본의 입김이 신설
펀드를 좌지우지할 것이 뻔하고 아시아에서 IMF의 존재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IMF의 최대지분국인 미국도 아시아 펀드를 막아야할 입장이다.

미국은 지난20일에 열린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측 대표가
아시아 펀드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은 조만간 아시아국 대표들과 조만간 회담을
갖기로 하는 등 아시아 펀드에 대한 실체 파악에 직접 뛰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엔 아시아 펀드에 대한 소문이 나돌때부터 냉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이에따라 아시아판 IMF 구상을 둘러싸고 아시아와 구미지역이 양쪽으로
갈라져 힘겨루기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본과 동남아국은 아시아 펀드는 IMF의 역할을
보완하는 기능만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IMF와 미국등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매끄럽게 아시아 펀드를 창설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할 태세다.

루빈 미국재무장관과의 회담을 십분 활용해 최대한 설득작전을 펴자는 것이
아시아국들의 전략이다.

한편 미국측은 자국이 주도하고 있는 WTO(세계무역기구) 금융서비스 협상에
동남아국들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시아 펀드에
무조건 제동을 걸어 동남아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조건부로 아시아
펀드를 용인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아시아펀드 추진안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서는 3가지
방향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논란만 만들어 놓고 다시 물밑으로 잠수할지, 아니면 설계도
대로 추진될지, 그것도 아니면 구미의 이해를 반영한 절충된 모양새로
태어날지의 3가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 양홍모 기자 >

[ 한국의 입장 ]

아시아 펀드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은 현실적으로 추진에 걸림돌이 많다는
것이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24일 아시아 통화기금이 당분간 발족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부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지역의 통화안정을 위해 추진중인
아시아 펀드 발족에 한국 정부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부총리는 이 펀드의 추진과 관련, 미국 등 G7 국가들과 협의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창설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 펀드가 만들어지더라도 각국이 자금을 방만하게 활용하는데
대해 제어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