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막되는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약칭 15전대)는 장쩌민
(강택민) 국가주석겸 당총서기의 정치적 지위를 한층 강화하고 현재의
정파간 세력균형이 깨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직개편과 인사분야의 "미조정"
이 이뤄지는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15전대에 대한 서방국가의 관심은 크게 세가지.

첫째 당 주석제 부활 등을 포함한 조직이 어떻게 개편될 것인가와 둘째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리펑(이붕) 국무원총리 차오스(교석) 전국인민
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거취등 인사문제, 셋째 개혁 개방을 어느
방향으로 가속화해 나갈 것이냐가 그것이다.

이들 관심사중 개혁 개방 가속화 부분을 결론부터 말하면 15전대는 중국
최고위층이 경제개혁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런 판단을 하는 이유는 지난 5월25일 장쩌민 주석의 당교연설 내용 때문.

장주석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빨리 가는 것 못지 않게 이에
필요한 경제건설이 중요하다. 외국자본의 과감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난 78년 덩샤오핑(등소평)이 개혁 개방을 주창할때 보수주의자들
을 반격하기 위해 내세웠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번 15전대에서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당의 입장을 재천명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과거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정쩡한 중도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라 개혁 개방에 드라이브를 거는 "혁명적인" 경제개혁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까지 나온 경제개혁의 골자는 "중국식 민영화" 계획.

부실 국유기업의 경영을 정상화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일부 국유
기업의 주식을 노동자에게 매각한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노동자도 국유기업의 주식을 사 주주권을 행사할수 있게
한다는 것.

일부 관측통들은 15전대에서 국가기간산업이나 안보관련 기업 8백~1천개를
제외한 전체 국유기업의 90%이상을 사유화한다는 원칙을 정할 것으로 예상
하고 있다.

경제개혁조치와 함께 관심사는 조직개편문제이다.

이 분야의 가장 큰 현안은 장쩌민 주석의 입지와 관련된 당주석직 부활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15전대는 당주석직 부활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지난 82년 12전대에서 덩샤오핑이 당주석제를 폐지했는데 덩의
정치후계자인 장쩌민이 이를 되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수 있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2일 다롄(대연)국제복장전에서 덩샤오핑으로 분장한 사람이 인민해방군
사열모습을 연출, 관중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중국인들 사이에 아직도 "덩샤오핑시대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속에서 덩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을 할리 만무하다는 말이다.

이밖에 15전대는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리펑 국무원총리와 차오스
전인대상무위원장의 거취문제도 논의한다.

리펑 총리 후임에는 주룽지(주용기) 부총리가 내정된 상태이다.

다만 당의 고위관계자(공산당 당교교장)가 "인사문제는 신중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점을 감안할때 국무원총리 임명과 일부
당서열조정 외의 인사이동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 베이징 = 김영근 특파원 >

[ 중국 전국대표대회란... ]

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는 중국공산당의 최고 의결회의이다.

이번 15전대 참석자(대표)는 지난 14전대 때보다 2.9% 늘어난 모두
2천48평.

이들 대표는 중국내 31개성 자치구 직할시 지역대표를 비롯 중앙기관
인민해방군 무장경찰 등에서 무기명으로 선출됐다.

새로 뽑힌 대표들의 특징은 과거에 비해 연령이 젊어지고 전문화됐다는
점이다.

직능별로는 당간부가 75.9%, 농업 문화 교육 과학 기술등 부문별 전문가가
24.1%이다.

성별로는 여성대표가 16.8%, 민족별로는 소수민족대표가 10.7%이다.

학력별로는 83.5%가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이며 55세 이하가 63.5%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15전대 대표자들의 나이가 젊어지고 고학력자들이 많은 것은 장쩌민
(강택민) 주석겸 당총서기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