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가 구가하고 있는 호황은 "근육질"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쓰러지고 말 "거품"일 뿐인가.

최근 미국 기업들이 인건비 지출이 급상승하는 등 수익력에 경계 경보가
발동되면서 "경기 논쟁"이 다시금 달아오르고 있다.

새삼스런 경기논쟁의 불씨는 지난 5일 앨런 그리스펀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중앙은행) 의장의 스탠퍼드대학 연설을 통해 지펴졌다.

그의 연설요지는 "최근 완전고용 상태에 따라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고, 이것이 기업수익에 부담을 주고 있는데도 주식시장은 이런
현실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칫 주식시장에 거품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며 전반적인 경기과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게 그린스펀의 우려다.

그린스펀의 이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8일에도 상승세를 보였다.

직전거래일(5일)보다 12.77포인트 오른 7,835.18에 마감됐다.

주식 투자가들이 그린스펀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직은"
미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점을 반증한다.

실제로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2.4분기 성장률은 당초 전망치였던 2.2%를
훨씬 뛰어넘는 3.7%에 이른바 있다.

물가 또한 8월말 현재 작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1.5%에 머물고 있다.

실업률 역시 25년래 최저치인 4.8~4.9%선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된다.

낮은 실업률은 미국 고용시장을 기업 주도의 "구매자 시장"에서 근로자들이
칼자루를 쥔 "공급자시장"으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입장에서는 핵심인력들에 대한 급여인상 등 인건비 부담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자 1면 기사로 바로 이같은 사실을 파고
들었다.

미국 기업들의 인건비 지출이 공식적으로는 올들어 3% 증가한데 그친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5~6%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최근 미국 업계에서는 하이테크 분야의 전문직은 물론 일반 판매직과
비서직에서까지도 인력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결과가 인건비 상승
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넉넉지 않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기업들 사이에 동업경쟁사로부터의
인력 빼돌리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일부 기업들이 "꼭 필요한 인력"
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당 임직원들에게 최장 3년간 연봉의 15~50%에 달하는
"이탈않기 조건부 상여금(retention bonus)"을 지급키로 하는 고육책을
쓰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연초의 한 연설에서 미국의 지난해 성장률이 5%를 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2%대에 머무는 등 "고성장.저물가"를 보인 점과 관련,
"근로자들의 양보(작년 미국의 임금상승률은 2.8%) 덕분"이라고 말했었다.

그랬던 근로자들이 더이상의 양보를 거부하고 기업들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점을 우려해 그린스펀이 발동한 "경기 경계경보"에 대해 주식시장
이 끝까지 딴청을 부릴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