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특약 독점전재 ]

< Laptops from Lapland, September 12, Economist >

대만의 PC제조업체인 "에이서"가 러시아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93년부터다.

세계 5위의 PC메이커인 이 회사는 그 해에 대만에서 생산된 PC를 직수입
판매하기 위해 현지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장사는 기대이상으로 순조로웠다.

판매액이 93년 4.4분기에 2백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 4천2백만달러로
급증했다.

PC수요가 매년 두자리 숫자씩 늘어나고 판매도 잘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시장을 본격 공략하기 위해선 현지조립공장건설이 급선무라는 점을 이
회사는 잘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서는 예상을 깨고 조립공장을 러시아에 세우지 않았다.

러시아 제2도시인 페테르부르크에서 2백km 떨어진 핀란드의 "라핀란티"란
시골구석에 전초기지를 건설한 것이다.

이 곳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지역이긴 하나 인건비가 러시아에 비해
10배나 높다.

그런데도 에이서가 이 곳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러시아의 조세법이 워낙 복잡하고 많아서다.

공장건설과 관련된 세금항목만 4천개가 넘는다.

세법을 지켜 일일이 세금을 내다간 매출액을 웃돌기 십상이다.

또 신설공장은 러시아마피아의 타깃이 되기 쉽다.

그래서 에이서사가 선택한 방안이 "우회전략"이었다.

핀란드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국경에서 러시아 유통업자들에게 도매로
넘기는 것이다.

판매증가율은 완만할지 몰라도 이것이 가장 안전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에이서사의 우회전략은 2~3년이 지난 요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무작정 러시아에 공장을 세웠다가 "백기"를 들고 철수한 서방기업들이
한두개 업체가 아니다.

미국의 IBM은 러시아정부가 수입부품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93년 러시아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런데 막상 공장을 가동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의회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입부품에 무관세혜택을 줄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게다가 러시아정부는 PC완제품 수입판매업체에 면세혜택을 부여했다.

작년 2월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인 IBM은 러시아사업에서 손을 털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사가 문을 닫았다.

세무당국이 GE의 예금계좌를 압류했기 때문이다.

GE측은 낼 세금을 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국세청은 "받은 적이 없다"며
세금을 납부할때까지 계좌를 막무가내로 압류해 버린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코카콜라는 지난 4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겪었다.

소방서에서 찾아와 "신사옥 짓는데 1백만달러를 내지 않으면 공장을 강제로
폐쇄시키겠다"고 윽박질렀다.

공장내에 설치한 화재경보장치와 물을 뿜는 스프링클러가 러시아규격에
맞지 않는다는게 이유였다.

규격을 어긴건 사실이지만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공장 가운데 복잡한 화재
안전장치 규격 조건을 제대로 따른 기업이 있느냐는 질문에 "들어보지
못했다"는게 소방서관리의 답변이다.

합작투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미국의 아이스크림 제조업체인 "벤&제리스"사는 합작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해 버렸다.

러시아당국 및 합작파트너와 합작에 필요한 조건을 협상했지만 도무지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작투자는 파트너와 부질없는 신경전만 벌일 수밖에 없어 시간낭비일
뿐이다.

결국 외국기업들이 러시아시장에 들어와 마음놓고 사업을 벌일 수 있기
까지는 오랜 시일을 요할 따름이다.

< 정리=이성구 런던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