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업경영 독주시대는 막을 내리는가.

소화물운송업체인 UPS의 파업사태가 지난 19일 노조측의 압승으로 끝남에
따라 향후 미국의 노사풍향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높다.

미국 경영계는 특히 UPS측이 당초의 호언과 달리 노조와의 줄다리기에서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는 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고 있다.

UPS 경영진은 <>임시직의 대거 정규직 승격 <>임시직 근로자의 시간급을
향후 5년간 평균 7% 인상 <>퇴직연금 지원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모두 노조측
요구를 들어줬다.

불과 1,2년전까지만 해도 경영진이 노조의 실력행사에 굴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파업은 곧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와 경제 전반의 쇠퇴를 야기하는
자해행위라는 데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UPS 파업을 전후해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제는 기업측이 노동자들에게 성장의 몫을 나눠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는 이번 UPS 파업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시각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ABC 뉴욕타임스 등 매스컴과 갤럽 등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들은 근
2대1의 비율로 노조측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미국 최대 소화물운송업체인 UPS의 파업으로 도.소매업체들이 영업에
타격을 받는 등 수십억달러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일어났는데도 그랬다.

이같은 국면 전환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독주에 짓눌려온 국민들의
저항감이 표출되기 시작한 징후"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이 임금 노동자인 미국 국민들은 80년대말부터 본격화된 기업
들의 대대적인 감량 경영과 구조조정의 풍랑에 밀려 조기퇴직 등의 불운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감량이 시대적 대세였던 만큼 내놓고 불평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기업들은 이같은 감량 등의 결과로 마침내 경쟁력을 회복했다.

덕분에 지난 1년간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5.5% 이하를 유지하는 등
국민들은 잃었던 직장도 대부분 되찾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수익력이 높아졌으면 그 과실이 노동자들에게도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1년간 미국 전체의 임금상승률은 단 2.8%에 불과했다.

한해전(2.9%)보다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0일자에서 이와 관련, "인플레율을 감안할 경우
최근 2년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UPS 파업의 귀결은 이런 점에서 최근 10여년간 지속돼온 "노동자
수난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노사간 세력균형을 되찾는 전기로 작용할 지가
관심거리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시기 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미국의 산업구조가 점차 단순 기능보다는 첨단 기술력에 의존하는 정보
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고, 이들 직종에서는 이미 엄청난 고임금이 보장
되고 있어서다.

반면 히스패닉 아시안 등 이민자들의 계속되는 유입으로 저임 노동력은
계속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는 만큼 단순 노무자들이 더이상 큰 목소리를
내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구조적 대반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