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최장수 지도자인 헬무트 콜 독일총리가 집권이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는 "엉망진창"인데다 정치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어서다.

야당은 물론 집권 연립정당내에서조차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국민들의 지지도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내년 9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총리후부자로 나설 가능성이 적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5년 장기집권을 해온 콜총리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세제
개혁의 실패다.

콜정부는 기업들의 과중한 세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벼러왔던 세제개편방안을 지난 6월 발표했다.

그런데 세제개혁은 초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상원격인 "분데스라트"가 거부한데 이어 야당은 빈부격차를 벌린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세제개편안이 아직 취소된 건 아니지만 내년 총선이전에 시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콜총리는 지난 5월 재정적자를 줄일 목적으로 정부보유 금자산을 재평가
하려다가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 세제개편작업도 "중도하차"될 운명에 놓여 있어 이미지 훼손은
둘째치고 "하는 일마다 안되는 게"요즘 콜총리가 직면한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기업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자동차메이커인 BMW의 한 간부는 "세제개혁의 실패는 독일에 대한 배반"
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들은 콜정부에 대해 "오늘날의 독일은 정부기능은 마비되고 정치리더십
마저 부재인 상태"라며 직격탄을 가하기 시작했다.

공장이나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기업총수들이
점차 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2차대전이후 서로 협조해온 일종의 "밀월관계"였다.

콜총리의 강력한 지지세력인 기업들마저 그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기업들이 등을 돌리게 된 데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요즘 독일기업들은 올들어 달러대비 21%나 절하된 마르크화의 약세에
힘입어 매출과 순익이 급격히 늘긴 했다.

그러나 남는 돈이 재투자되는 것도 아니다.

"배고픈 독일국민들"(실업자)이 많다보니 분배 명목으로 뜯기는 돈이 적지
않다.

독일의 실업자는 4백40만명으로 전후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

경제는 엉망진창이고 세제개혁마저 안되는 상황에서 "탈독일"을 서두르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서 빠져 나간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는 2백50억달러를
웃돌았다.

지난 93년에 비해 두배이상 증가한 셈이다.

독일에 진출한 외국기업들도 지난해 독일에서 벌어들인 26억달러규모의
순익금을 자국으로 빼돌렸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제적 현실은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기업들이 살아
남는데 필요한 스피드와 탄력성을 막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방해꾼들은 정치권이고 총체적인 책임은 콜총리에 있다고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기업과 국민들의 지지도 하락,전후 최악상태인 경제, 당내기반 및 지도력
약화.

콜총리는 자신의 기반을 약화시킨 요인이 많은 것처럼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콜총리는 "나의 정치적 운명은 내년 상반기께면 드러날 유럽단일통화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요즘같아선 그때까지 수상직을
간직하고 있을지조차 의문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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