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가 거둔 성공의 뒤안길에는 실패라는 "어머니"가 있었다.

이 회사가 아시아에서 맛봤던 처절한 좌절은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GE는 당시 서방 기업들사이에 "떠오르는 노다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던
중국시장 선점을 노리고 행동을 개시했다.

중국 전역을 샅샅이 훑다시피 하며 현지 업체와의 합작 생산.판매가능성을
타진해 나갔다.

가능성이 있는 합작 후보기업들을 10여개 선정해 심사에 들어갔다.

몇군데 업체와는 의향서를 체결하거나 가계약까지 맺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그러기를 수십개월.

그러나 성과는 "전무"였다.

중국에는 이미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든 상태였고, 그 결과 광둥성 한
지역에만 1백개 이상의 에어컨 공장이 난립해 있을 정도의 공급 과잉이
빚어지고 있었다.

현지 브랜드 제품도 수두룩했다.

반면 대부분의 공장들이 기술 낙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도로
등 수송사정이 엉망이라 생산한 제품을 제대로 유통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GE가 "투자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있는 투자이익률
20~25%를 맞추기란 연목구어나 마찬가지였다.

GE가 여기서 찾은 해법이 바로 "스마트 폭격 경영"이었다.

거대한, 그러면서도 지역별로 시장 사정이 천차만별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주요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

GE는 결국 전략지역별로 합작 파트너를 가려낸 뒤 품질.기술.서비스.제조.
판매 등 부문별로 본사 경영지원팀을 수시로 파견, "GE 기준"에 맞는
기업으로 일궈냈다.

"스마트 폭격"의 유용성을 확인한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