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국제화"란 원대한 꿈을 안고 서쪽으로 떠난 한국 금융기관들이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출이 대부분인 은행과 종금사는 부실채권의 공포에 떨고 있고 증권
투신은 대규모 환차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준비운동과 정보가 부족했던게 낭패를 보게 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부실채권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종금업계다.

한국 한외 한화 등 21개 종금사들은 6~7억달러로 추산되는 태국기업 대출금
대부분을 떼일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종금사 대출금이 영업정지를 당한 태국단자사 16개사를 포함한 91개
단자사(finance company)에 집중돼 있어서다.

태국정부가 지난달 27일 16개 자국 단자사에 영업정지를 내리면서 "외국
금융기관은 높은 전문성을 갖고 심사를 거쳐 대출해준 만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앞으로 6개월안에 20여개 단자사와 일부 소형 은행들이
쓰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첩첩산중으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종금사 위기는 예정돼 있었다는 게 방콕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금융기관의 견해다.

오재영 산업은행 방콕사무소장은 "지난해 투자금융에서 전환된 종금사간
국제영업을 할 수 있게되자 충분한 준비없이 경쟁적으로 달라붙은게 부실의
씨앗"이라고 밝혔다.

더우기 종금사는 국제 조달 금리가 은행보다 높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정크본드(위험이 높아 수익률이 높은 채권)"로 여겨지는 불량채권에 손을
대 위험이 더욱 커졌다.

36억달러를 태국기업에 꿔준 조흥 한일 등 29개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달 금리면에서 종금사보다 약간 유리할뿐 미국과 일본계 은행보다는
훨씬 불리한 탓이다.

태국 금융사정에 밝은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보 삼미그룹 부도와
진로 대농그룹의 어음부도방지협약으로 한국내 자산운용이 어려워지자 태국
쪽으로 옮긴게 화근"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벌여 높고 떠나간 잔치 끝판에 몰려와서
쉰 음식을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린 격이 됐다.

렝챠이(Remgchai) 태국중앙은행(BOT) 총재가 지난14일 전외국금융기관에
편지를 보내 "지난달 27일의 태국정부 발표가 외국금융기관 대출금을 상환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사정이 나아진 것은 없다.

"렝챠이 총재의 서신이 곧 지급보증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대출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5~10년이나 걸리기 때문"(김주경 신용보증기금
방콕사무소장)이다.

바트화 폭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봤다는 루머가 나돈 증권 투신들의 피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액만 5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역외펀드를 통해 바트화 표시 채권을 매입한 경우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직 안개속이다.

송인 산업은행 방콕사무소차장은 "전환사채(CB)와 일반채권을 산 한국계
자금이 상당히 있다"고 밝혀 이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태국에 지점이나 현지법인등 거점을 갖고 있는 금융기관은 폭풍우
에서 한 발 비껴 서 있다.

태국기업의 부도증가와 핫머니 공격등으로 연초부터 바트화 평가 절하를
감지하고 대비를 해온 덕이다.

유덕희 외환은행 방콕지점장은 "연초부터 대출금을 회수해 대출금규모를
3억5천만달러에서 2억달러로 줄였다"며 "양파텍사등 일부 기업에 대한
대출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나 비중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4월6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MILC(한국산업리스의 태국현지합작법인)의
유종순 사장은 "바트화 폭락이후 영업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태국진출 실패 사례는 "전략없는" 국제화의 피할수 없는
시행착오란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제라도 제2,제3의 태국사태를 막을수 잇는 방책 마련이 시급해진다.

[방콕=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