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점들은 대개 점포 레이아웃을 자주 뜯어 고친다.

하다못해 상품 진열코너를 이렇게 배치했다가 저렇게 바꾸면서 변화를
준다.

최고급 백화점인 블루밍데일에서부터 동네 책방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신"한다.

그렇다면 기업 단위의 변신 템포는 어느 정도일까.

"1주일만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도 기업들의 경영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존 허시 베어스턴스증권사 투자분석가)

변신을 통해 "되살아난 공룡"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회사가 IBM이다.

이는 월가에서 구할수 있는 몇가지 경영지표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수 있다.

92년 6백48억5천만달러였던 매출이 지난해 7백59억5천만달러로 늘어났다.

93년 80억달러의 적자가 작년엔 50여억달러의 흑자가 됐다.

93년 한때 40달러 선까지 곤두박질쳤던 주가는 최근 1백30달러 수준까지
회복됐다.

IBM의 "부활"은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부를 낸데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IBM의 고객들은 신메인프레임 시리즈가 나오기까지는
족히 5~7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1년이 멀다하고 신기종을 쏟아내고 있다.

개인용컴퓨터(PC)도 마찬가지다.

라이프사이클을 6개월, 아무리 길어봤자 1년으로 잡고 신제품 개발계획을
짠다.

"시간과의 싸움에선 한번 이겼다고 해서 영원한 승자가 될수 없다.
업계 정상의 기업이 보유한 기술도 20%가 매년 무용지물이 된다. 계속
변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샌호제이에서 인터액티브사를 경영하는 재미교포 조성률사장의 말을 들으면
미국의 경영학은 곧 "변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스피드 변신학" 같다.

경영=변신, 그리고 그 전제는 물론 "경쟁력 강화"에 있다.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 경쟁력 강화다.

그래서 다운사이징(감량경영)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미국기업은 인건비 몇푼 줄이자고 사람을 자르는게 아니다.

"경영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더 키우기 위해
종업원을 해고하는게 미국기업이다. 그래서 한번 잘랐다하면 몇만명씩 목을
친다. 지난 10여년간 몰아친 미국기업의 대량 감원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유럽식과 큰차이 아메리캐피털리즘은 이런 점에서 유럽국가들의 복지형
자본주의와 다르다. 그들은 "임금줄이고 해고하는 것이 무슨 개혁이냐"고
빈정거리지만..."

실리콘밸리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저널지 편집국장 톰 요크씨가
들려준 얘기다.

프록터갬블(P&G)사가 4년전 단행했던 구조조정은 바로 아메리캐피털리즘에
기초한 미국식 다운사이징의 전형일 수 있다.

당시 이 회사는 주식배당을 늘리는 등 경영이 그런대로 괜찮은 상태에서
"1만2천여명의 감원과 세계 30개 공장의 폐쇄방침"을 발표했다.

이유는 물론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였다.

체이스맨해튼은행을 흡수 합병한 케미컬뱅크.

이 은행도 15개 부서를 단 한명의 여성으로 줄인 적이 있는데 경영이
어려워 "감량"을 했다면 어떻게 "체이스"를 잡아 먹을 수 있었겠는가.

"메이드 인 재팬"에 치여 허우적거렸던 자동차업계도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일본 혼다자동차의 "어코드"를 제치면서 "토러스 신화"를 이룬 포드사가
그 대표적인 주인공.

토러스 신화 역시 앨릭스 트로트먼 회장의 변신노력결과다.

그는 연인원 7만8천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재교육을 시키면서
부품업체의 감량에 손을 댔다.

"어떤 전자 관련부품의 경우 수십개나 되는 납품업체를 1개사로 줄여
놨더니 우선 가격이 떨어지더라"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의 납품업체 "해고" 작업은 2000년까지 계속된다.

2천4백개 업체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하에.

무자비한 감량과 끝없는 변신.

이것이 미국 기업들의 공통 화두이자 오늘의 미국경제를 이끌어 낸 평범한
비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사자인 미국 기업인들 자신은 "앞으로의 변신 방향"을 묻는
질문에 "누가 알 수 있겠느냐"는 한마디로 잘라 응수한다.

"IBM은 더 이상 어제의 IBM이 아니다. 그러나 내일의 IBM이 지금같은
모습일 수도 없다.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그래서 변할 테니까"

회사의 재정부문 최고 책임자(CFO)인 리처드 토먼의 얘기다.

단 한가지 미국기업에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게임의 룰''로서 시장경쟁원리
를 지키는 아메리캐피털리즘 뿐인듯 싶다.

류화선 < 한경자동차신문 국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