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역흑자는 경기의 호/불황이나 엔화의 고저에 관계없이 줄어들지
않았다.

일제자동차판매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미국시장의 점유율을 회복
하고 있다.

워크맨같은 전자제품에서 카메라 등 정밀기기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경쟁력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도 미국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다.

이 분야에서 양국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돼 있다.

도쿄시내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뒤덮은 것도 실리콘밸리산 소프트웨어들
이다.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 최신호(6월2일자)는 소프트웨어분야에서 양국의
격차가 앞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네트스케이프 로터스등 미국의 소프트웨어회사들에 세계
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을 꼽으라면 단연코 일본이다.

미국산 PC응용프로그램의 일본판매는 지난 한햇동안에만 10억달러에 달했다.

1년전보다 27%가 늘어난 것이다.

93년 3억달러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단 3년 사이에 3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 됐다.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미국내의 정서는 가공할 일본의 소프트웨어가 미국
시장을 다시 넘볼 것이란 공포감에 가까웠다.

그것은 자동차 공작기계 반도체등에 질려버린 미국인들의 기겁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은 지레 겁먹은, 미숙한 예상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일본은 소프트웨어를 자동차처럼 생각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면 되는 것으로 오판한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성공은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카우보이"식의 접근이
효과적이란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것은 창의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한사람의 개발자나 소수정예의 개발
그룹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다.

그 와중에서 경쟁은 자연스럽게 불이 붙는다.

언뜻 보기에 일본고객들은 일본제 소프트웨어를 사는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면 될수록 미국산 소프트웨어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일본의 회사간부들은 기업이 글로벌화돼 있기 때문에 이미 세계시장에서
받아들여진 패키지제품을 받아들이는 것이 업무효율화에 보다 적합하다고
말한다.

언어구조상으로도 키보드에 입력하기 쉬운 영어와 한자조작을 많이 해야
하는 일어간의 차이에서 일본의 소프트웨어업자들은 핸디캡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컴퓨터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 일본의 사무실이 비좁았다는 사실이
또 다른 오판을 불러왔다.

일본의 프로그램 개발업체들은 서류더미에 파묻혀 지내는 사무환경에 젖어
회사원과 PC의 비율이 1대1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끌어내지 못했다.

사무실에 한대의 복사기가 있듯 한대의 데스크톱PC가 있는 정도로 앞으로의
사무실을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는 실질적으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적자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 상무부가 무역수출입통계에 소프트웨어수출을 집어 넣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는 제조업제품이 아닌 서비스의 수출이라는게 상무부의 생각이다.

디지털시대에는 전통적 통계치만으로 교역의 실상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