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생명공학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유럽의 대접전이 예고되고
있다.

유럽은 복제양 "돌리"탄생을 계기로 "미국따라잡기"에 시동을 걸었다.

경영컨설팅업체 에른스트&영사(사)에 따르면 유럽의 생명공학업체는
지난해말기준 7백16개사였고 고용인력은 2만7천5백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1천2백87개업체에 11만8천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부문에서는 미국이 1백34억달러인데 반해 유럽은 20억달러에 그쳤다.

미국이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성장속도(증가율)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럽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 업체수와 고용인력부문에서 각각 23%와 60%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미국의 경우 각각 마이너스 2%(업체수)와 9%(고용인력)에 그쳤다.

생명공학산업이 미국에선 둔화조짐을 보이지만 유럽에선 초고속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유럽은 수년내에 미국과 대등한 게임을 벌일
정도로 몸집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지난해 연구개발(R&D)투자비의 증가율을 살펴보면 유럽의 "장미빛
미래"는 확연해진다.

유럽업체들의 R&D비용증가율(20%)이 미국(3%)에 비해 무려 7배 가까이
높았다.

생명공학업체들이 대개 10년이상 투자와 연구를 거친후에야 비로소 신약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점에서 연구개발비는 향후 성장을 가늠하는 척도다.

유럽업체들의 초고속성장세는 투자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고 있다.

유럽 생명공학업체들이 지난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총액은
18억2천만달러였다.

95년에 비해 무려 4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는 유럽각국이 지난 수년간 증시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증시 상장요건을 완화함으로써 거래실적이 취약한 생명공학업체들도
상장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증시개혁은 벤처기업공개로 거액을 챙기려는 창업투자회사들을 끌어오는
역할도 했다.

상당수 벤처캐피털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해온 것이다.

증시개혁은 또 인력조달을 활성화시켰다.

기업들은 스톡옵션을 통해 주식을 현금 대신 직원들과 과학자들에게
제공했다.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자 우수 인력들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특히 생명공학벤처기업의 경영에 풍부한 노하우를 가진 미국경영자
상당수가 유럽으로 이주했다.

유럽 정부들은 생명공학지원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독일은 지원금으로 1억5천만마르크(8천8백만달러)를 책정했다.

영국은 지난해 정책적인 육성방안을 제시했다.

프랑스는 올들어 15억프랑(2억6천만달러)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생명공학에 무관심하던 종전의 태도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유럽인들은 이제 생명공학을 차세대주력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생명공학업계는 시련기를 맞고 있다.

투자자들이 지난 수년간 생명공학주식에 대한 투자를 회피함에 따라
자금난에 봉착한 업체들간의 인수합병(M&A) 해고 및 파산이 속출하고 있다.

생명공학업체들의 주가는 올들어 5%정도 떨어졌다.

업체들의 신약시판이 지체되면서 투자자들이 생명공학업계의 미래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공학업체들의 주가가 과대평가됐다는 신중론도 가세했다.

영국의 한 분석가는 주당 40달러선을 호가하는 한 미국업체의 적정주가는
그 절반수준인 20달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럽이 미국을 추월하자면 여러 장벽을 돌파해야만 한다.

우선 벤처기업의 경영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유럽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상품화하는데는 미국에
뒤진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과학자들이 벤처기업창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점이다.

또 동물복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풍토도 걸림돌이다.

유럽이 이같은 장애물들을 극복할 때 미국추격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유재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