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계가 화폐통합이란 암초에 걸려 진통을 겪고 있다.

프랑스대통령은 조기총선을 선언했고, 내달초 총선을 앞둔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탈리아 내각은 붕괴위기에
몰려 있다.

오는 99년부터 실시되는 화폐통합의 첫 차를 타기 위해 인기없는 긴축정책
의 추진이 불가피하나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내에서도 통합용 ''긴축''에 대한
반대여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22일 새벽(한국시간) 특별담화를 통해 하원을
해산, 오는 5월25일 총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내년 3월로 예정된 총선일정을 10개월정도 앞당긴 것이다.

하원 의석 5백77석중 4백80석이란 압도적 다수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시라크대통령이 돌연 조기총선을 선언한것은 유럽 화폐통합에 대한 집념의
결과이다.

그는 화폐통합 첫차를 타기 위해서는 초긴축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고 그여세를 몰아 "초긴축"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
시라크대통령의 계산이다.

선거없이 그대로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고 따라서
내년 3월의 정기 총선에서 시라크의 공화국연합당(RPR)등 중도우파연합이
큰타격을 받게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기선거에 나선 것이다.

그의 "도박"과 같은 결정은 현재 프랑스가 처해 있는 경제상황을 보면
상당분 납득이 간다.

프랑스는 화폐통합에 참여하려면 금년말 국내총생산(GDP)대비 재정적자폭을
3% 이내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그폭이 3.8%에 이를 것이라는게 자체 분석이다.

민영화 대상인 프랑스 텔레컴의 연금비축분을 재정적자폭을 줄이는데
편법적으로 사용해도 3% 이내로 줄이기는 어렵다.

때문에 12.8%에 이르는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의 조기실시 사회보장
감축등 인기없는 내핍정책의 추진은 불가피한 실정인 것이다.

시라크도 이날 담화에서 "화폐통합일정등을 감안할때 앞으로 수개월간은
상당히 중요한 시기"라며 조기총선의 이유를 설명한후 "달러및 엔화에 대응,
유럽화폐도 그힘을 가져야 한다"며 화폐통합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
했다.

지난 58년 제5공화국 출범이후 의회해산을 통해 조기총선을 실시하기는
이번이 5번째.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응해 파업이 끊이지않는 지금 시라크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이길지는 불투명한 분위기다.

오는 5월1일 총선을 앞둔 영국정계도 국내문제보다는 화폐통합과 유럽통합
이 보다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집권보수당의 존 메이저총리는 화폐통합에 대한 그의 "지켜보자(wait
and see)"는 전략에 보수당 후보의 20% 정도가 화폐통합 불참론을 내세우며
반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오는 6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EU정상회담에 빈손으로 참가할수는
없다"며 그의 정책을 지지해 줄것을 동료의원들에게 호소하고 있으나 총선
유세과정에서 당내 반통합론자들의 입김이 날로 거세지는 분위기다.

총선을 앞두고 가뜩이나 노동당에 비해 열세에 몰려있는 보수당으로서는
화폐통합논쟁이 또다른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로마노 프로디정부도 지난주말 의회 예산위원회가 화폐통합용
긴축예산안에 반대해 어려움에 몰려 있다.

프로디정권은 재정적자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대폭적인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이른바 "미니예산"의 승인을 호소중이나 이달말 의회에서 그
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부결되면 프로디정부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도 오는 98년 총선에 재도전할 뜻을 밝혀 독일정계에
충격을 주었다.

지난 94년 총선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한 그가 재출마 선언과
함께 내세운 이유는 화폐통합을 통한 유럽통합의 완성.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있어 아직은 논란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으나 그때
가면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 집권 기민당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브뤼셀=김영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