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EU(유럽연합)가 이란반체제인사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로 인해
외교전에 돌입함으로써 구미선진국들의 대이란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유럽국들이 자국대사를 소환키로 한데 이어 경제봉쇄조치까지 단행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어 특히 국제원유시장이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유등 자원개발을 위해 이란에 진출해 있는 서방 기업들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베를린 지방법원이 지난 92년9월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내린 판결문 내용이다.

베를린 법원은 이란의 반체제인사 4명을 살해한 범인들에게 형을 선고
하면서 이란의 하셰미 라프산자니대통령과 정신적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및
알리 팔라히얀 정보부장등 최고층을 배후인물이라고 밝혀 외교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독일정부는 바로 자국대사를 소환했고 이란도 대사소환으로 맞대응했다.

EU 회원국도 독일과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결의해 전면적인 외교적이
벌어진 것이다.

유럽에서는 친이란세력의 테러에 대한 우려감마저 고조돼 경찰이 비상근무
에 들어갔을 정도다.

이번 판결이 있기전까지 서방선진국들가운데 이란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가 서유럽국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상황반전으로 원유시장과
서방기업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지난 92년이후 EU는 미국 클린턴정부의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이란과
줄기차게 경제협력관계를 모색해 왔었다.

미국정부는 이란을 "테러집단 배후나라"로 지목하면서 유럽쪽에 경제제재
동참을 요구해 왔다.

그때마다 EU지도부는 테러및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동시에 교역도 한다는
"비판적인 대화(critical dialogue) 원칙"을 강조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다져왔다.

그렇지만 사법부의 판결문을 통해 이란의 최고층이 테러의 배후라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유럽정부로서는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재정립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미국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각 국무부성명을 발표하면서 서유럽국들이
미국의 대이란 경제봉쇄조치에 동참할 때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이란에 대한 국제적인 경제봉쇄가 거론됨에따라 두바이 런던
싱가포르 뉴욕등지의 국제 원유시장 거래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향후
사태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뉴욕상업거래소의 원유거래인은 이번 사태가 유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유가는 10일 런던과 뉴욕시장에서 기술적 반등으로 일단 미미한 상승폭을
보였을뿐 이란사태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이란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원유생산쿼터가
크며 하루 수출량은 2백50만배럴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란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의 에너지회사및 종합상사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이란의 최대 교역국은 문제의 판결문이 나온 독일도 지난해 이란과 19억
달러에 이르는 교역규모를 기록했다.

유럽기업인들은 미국의 경우 이란내 사업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테러문제
와 연관해 경제봉쇄를 강조해 왔지만 독일 프랑스등 이란과 경제적인 이해
관계가 많이 걸려 있는 유럽국들은 문제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EU와 이란간의 외교전이 경제관계 단절로까지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유럽기인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따라 이란문제로 경제봉쇄를 강요하는 미국과 실리를 쉽게 버릴 수
없는 EU가 한 바탕 외교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문 파문으로 미국과 EU및 이란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외교가
한층 더 복잡하게 된 사실은 분명하다.

<양홍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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