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다국적지대.

세계 어디나라에서든 기술에 자신이 있는 자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곳에
몰려든다.

그 열기가 "하이테크이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그러나 돈이 없어도 여유를 가질 수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실리콘밸리언"들
이다.


그레고리 센크만(35).

우크라이나 태생인 그는 지난 80년 부친의 손에 이끌려 미국땅을 밟았다.

돈도 연고도 없는 불안한 상태였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를 강한 의욕이 솟았다.

직장을 다니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그는 90년 실리콘밸리에서 제네시스란
회사를 설립했다.

중소기업용 통신.컴퓨터시스템을 깔아주는 사업이었다.

구축이 간단한 소프트웨어(SW)를 무기로 제네시스는 6년만에 직원 2백명을
거느리는 덩치를 갖게 됐다.

그러나 본게임은 이제부터.

항공권 공연티켓등을 예약.판매하는 컴퓨터통신서비스시장을 겨냥한
독자적인 시스템개발을 끝냈다.

그는 매출액의 30%를 해마다 연구개발비에 쏟아붓고 있어 타사제품에 비해
시스템SW의 기술적우위를 자신하고 있다.

그가 느끼는 실리콘밸리의 장점은 고급기술인력의 풍부함이다.

제네시스에도 50명의 구소련출신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다.

이미 실리콘밸리에는 "러시안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일설에는 로켓 미사일등 최첨단의 군사기술개발에 간여했던 A급기술자만도
캘리포니아에 3만명을 헤아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 태생의 캄란 엘라히안(42)은 혈혈단신 기회를 찾아나선 경우다.

비밀경찰이 감시하는 70년대 이란내부의 답답함과 자신을 묶어두려 하는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 18세 나이에 감행한 모험이었다.

유타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휴렛팩커드에 입사했다.

그러나 독립에 대한 갈망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중 그는 "내 회사를 세워보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표시에 대한
상사의 답변에서 실리콘밸리의 넉넉함을 본다.

답변인 즉 "일단 도전해 보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 혹시 실패한다해도
자리는 그대로 비워둘테니까"였던 것.

81년 최초로 회사를 설립한 엘라히안은 현재까지 3승1패를 기록했다.

세차례나 회사를 일으키고 키워 매각하는데까지 성공했지만 공교롭게도
가장 늦게 설립한 모멘트란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현직은 "실리콘밸리의
떠돌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일본 한국 이스라엘 인도출신의 벤처기업인들도 즐비하다.

물론 일류대학을 나와 NASA(미항공우주국)같은 국가연구기관에 몸담았던
미국의 젊은이들도 허름한 창고에서의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이 화려한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
(주로 창업투자회사)의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들을 "에인절"이라고 부른다.

어려움을 도와주는 "천사" 같다는 뜻에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30분거리에 있는 멘로파크시티의 샌드힐거리.

1백여개의 벤처캐피털이 늘어서 있다.

당연히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첫 걸음을 하게 되는
곳이다.

일본 한국처럼 보수적인 금융기관들이 주를 이루는 나라에서는 은행이
투자하는 기업에 벤처캐피털이 들어가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곳은 완전히 거꾸로다.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결정한 벤처기업에는 은행이 돈을 빌려 주려고
안달이다.

그만큼 벤처캐피털이 솎아내는 벤처기업은 은행으로서도 확실한 투자처라는
얘기다.

정상급 벤처캐피털로 유명한 클라이너파킨스, 엑셀파트너스등은 한해
1천억달러정도를 운용, 30~40%의 높은 투자수익률을 내고 있다.

한번 투자한 벤처기업은 웬만하면 방치하지 않는다.

벤처캐피털은 단순히 자금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경영상태
를 점검하고 인사에 개입하기도 한다.

"경영파수꾼"으로 일가견을 가진 적극적인 에인절들이 널리 포진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실리콘밸리의 자랑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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