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발전의 주도적 위치는 벤처기업들이 차지할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벤처를 육성하는데 각국정부가 혼신
을 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도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난국의 돌파구를 모색키로 했다.

그러나 벤처는 자동차나 철강산업에서처럼 "집중육성"이란 전통적 방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의 본산지 실리콘밸리를 두차례에 걸쳐 집중 분석, 벤처산업육성의
좌표를 설정해 본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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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 실리콘밸리.

하루에도 수십개의 벤처기업들이 21세기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태어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실리콘밸리의 샌드 힐 로드를 따라 밴처기업의 자금줄인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지난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벤처캐피털규모는 22억5천만달러.

이는 미국 전체의 3분의 1, 전세계의 6분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어떤 요인들이 이처럼 밴처기업들을 실리콘밸리로 빨아들이고 있는가.

일부에서는 양질의 노동력, 밴처개피털에 대한 용이한 접근, 환상적인
산.학협동시스템등을 꼽고 있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같은 하드웨어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실패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

따라서 실리콘밸리에선 기업의 파산은 일상사다.

호들갑을 떨거나 좌절하는 일도 없다.

곧 재기할 수 있는 토양이 완벽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재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관련 벤처기업의 대부분이 불과 얼마전 파산을 경험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실리콘밸리가 과거의 실수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러운 곳인가를 알 수 있다.

또 실리콘밸리는 "배신"이 용서되는 유일한 곳이다.

어느날 갑자기 동업자가 회사를 박차고 나가 바로 옆에서 새로운 밴처기업
을 세운다고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또 경쟁업체가 직원을 빼가는 것을 부도덕한 짓으로 매도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간수하기 힘든 것이 직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처럼 배신에 익숙한 실리콘밸리사람들의 여유있는 태도도 밴처기업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중의 하나다.

실제 인텔을 포함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내노라하는 벤처기업들은 이러한
배신을 통해 탄생하고 성장해 왔다.

다양성과 개방성도 실리콘밸리의 큰 강점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형태과 규모는 각양각색이다.

정해진 틀과 규칙도 없다.

피부색깔과 성을 구별하는 일도 거추장스럽다.

어느 누구든 환영한다.

무한한 창의력과 새로운 기술만 있으면 언제든지 오케이다.

따라서 이를 밑천으로 삼고 몰려든 벤처기업들이 활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보다 많은 사업기회는 이런 다양성과 개방성속에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신기술개발에 대한 후꾼한 열기도 밴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보금자리를 트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리콘밸리는 찾아드는 대다수 벤처기업들이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주의자들일 것으로 믿고 있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들중 대부분은 단지 첨단기술 그 자체에 매료돼 이곳을 찾고 있다.

세상에는 돈버는 일보다 훨씬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있다는걸 알고
있어서다.

이들은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도 끊임없이 기술을 이야기
한다.

이들에겐 기술은 종교인 동시에 마약인 셈이다.

한번 찾아든 벤처기업이 쉽사리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에서다.

오늘도 한국 일본 인도등 세계각국의 정부관료나 경제전문가들이 "왜
실리콘밸리인가"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자국판 실리콘밸리건설의 단서를 잡기 위해서다.

이들이 만약 수십년동안 사람, 기술, 돈, 노하우가 한데 어우러져 일궈낸
실리콘밸리의 이같은 독특한 문화를 약간만이라도 이해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반쯤의 성공은 보장받은 셈이다.

<김수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