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말레이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말레이시아경제가 보여주고 있는 급속한 발전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역동적인 것으로 표현돼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분석한 (주)말레이시아는 배타적인 특정
그룹속에서만 자원분배를 거듭, 경제의 투명성과 기업운영의 효율성이 무시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하티르총리가 주도하는 최근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이 나라 경제가
용솟음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멀티미디어수퍼회랑(MSC)은 그중의 하나.

콸라룸푸르에서 인근 신공항까지 50km에 달하는 지역을 최첨단 하이테크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20일에는 말레이시아가 전도시(MEC시티)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동안 낙후돼 있던 파한주(주)에 가전복합단지를 조성, 세계전자제품시장
에서 말레이시아산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주)말레이시아의 모습에는 이같은 경제의 역동성이 가미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서방언론이 들고 나온 진단은 관계와 재계가 빈틈없는
"부패색채"의 사슬로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말레이시아국민차기업인 히콤사 회장에 살레 수롱씨가 취임했다.

전임자였던 야하야 아마드 회장이 헬기폭발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느닷없이
이뤄진 결정이었다.

문제는 수롱회장은 대체 히콤사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점이다.

물론 몇%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냐가 꼭 알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굴지기업에서는 이같은 "은밀성"이 상식으로 통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회장들이 단순히 정부인사의 대리인으로 내세워지기도 하는
구조속에서 필요해진다.

말레이시아를 움직이는 이너서클(정관계 주요실력자들의 집단)은 상호간
"보호-피보호"의 관계가 아주 끈끈하다.

정부는 간단히 특정기업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국영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얻는다.

그것도 때때로 "할인된 가격"으로.

이같은 기업인중에는 말레이나 인도계도 있지만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계의 비율이 가장 크다.

정부투자공사를 맡은 라시드 후세인총재 말레이시아항공의 타주딘
람리회장등은 대표적인 정상들이다.

"(주)말레이시아"를 이끄는 구성원들은 마하티르 수상이나 안와르 부수상
자이누딘 대통령경제수석등에게 충성을 표한다.

충성의 정도는 정계지도자가 기업인들에게 대형발주를 안겨주는 힘을 보여
줄 때 더욱 강해진다.

충성이 말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란 추정을 어렵지 않게 할 수있다.

또 대형발주가 주어지면 나름대로 사회공헌을 해야 한다.

세계최대길이(2km)의 건물을 콸라룸푸르에서 짓고 있는 KL리니어시티란
회사는 마하티르를 감동시켜 정부토지를 매입했으며 그 댓가로 도심속을
가로지니는 강과 강둑의 빈민촌을 새단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에는 해외투자에서도 인너서클의 유대관계가 힘을 발휘한다.

말레이시아정부는 남아공 베트남 캄보디아등 경제성장이 유망한 국가들을
선정, 우호적인 관계유지에 힘을 쏟고 있다.

말레이시아 기업이 이들 국가에서 수주한 대형국책사업들은 자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게 통설이다.

물론 "(주)말레이시아"가 효율적인 자원배분등 경제발전전략에서 잇점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단점도 결코 만만챦다.

말레이시아항공이 폐쇄하고 싶은 국제선라인에 계속 비행기를 띄우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부에노스아일레스와 베이루트라인은 수익성이 전혀 없는 노선.

그러나 정부의 눈치로 인해 유지되고 있다.

조만간 자그레브에도 돈만 까먹게 될 말레이시아항공기가 날아가야 한다.

기업운영의 효율성이 고려사항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말레이시아판 한보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