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민자유치사업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중국 필리핀 파키스탄 등 아시아 개도국들이 도로 항만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기 위해 외국의 민간자본을 앞다퉈 끌어들이고
있다.

기존의 공공차관조달방식으로는 폭발적인 SOC수요를 감당하는데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돈없는 정부들이 짜낸 일종의 고육책인 셈이다.

민자SOC사업이란 수주하는 측이 공사재원조달에서부터 시공과 운영권까지
떠맡는 방식이다.

수주측은 금융을 조달한뒤 완공시설물을 운영해 얻는 수익으로 투자원금과
이익을 환수한다.

미국 투자신탁회사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지역의 외국민자SOC건설
계약체결 규모는 50억달러에 달했다.

올해에는 그 규모가 1백억달러로 늘어나고 내년에는 1백5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대부분의 민자SOC사업은 공공차관조달이 어려운 "발전부문"에 편중돼 있다.

계약방식은 "투자개발형" 또는 "기획제안형"이라 불리는 BOT(Build,
Operate & Transfer )와 BOO(Build, Operate & Own)가 대종이다.

BOT는 수주자가 시공권과 운영권을 갖지만 일정기간후 설비를 발주자에
되돌려 주는 방식.

반면 BOO는 시공자가 지분매입을 통해 소유권까지 갖는다.

이같은 계약방식을 도입하게 된 경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는
파키스탄의 하브강유역 화력발전프로젝트.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 80년대초 재원부족으로 이 프로젝트에 외국민자도입
을 추진했다.

그러나 복잡한 행정절차 등으로 10여년간 협상이 연기돼 오다가 지난
94년에야 BOO방식으로 계약됐다.

수주측이 자본을 조달, 올해말까지 발전소를 완공해 주면 파키스탄정부가
전력을 kW당 5.9센트에 산다는 조건이었다.

수주자에 고수익이란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 파키스탄은 전력부족으로 인한 연간 생산손실액이 무려 10억달러로
추산됐기에 민자유치가 절실했다.

이런 식의 투자개발형사업을 가장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나라는
필리핀.

지난 90년 BOT법을 도입한 뒤 여러개의 민자발전소를 외자로 추진하고 있다.

이로써 마닐라에는 지난 94년부터 전력부족사태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부는 올들어서도 마닐라일대 수도시스템 건설사업에 벡텔그룹의 자본을
유치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처음으로 발전소발주공사 6~7건에서 외국민간업체의 자본투자와
시설운영권취득을 허용했다.

이중에는 외국기업이 1백% 단독출자한 프로젝트도 있다.

세계은행은 이같은 민자허용방식이 앞으로 중국 인프라사업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오는 2000년까지 1만6천MW의 발전소 건설프로젝트에 2백억달러의
민간자본을 도입할 방침이다.

인도도 최근 민자SOC사업에 세제우대와 행정규제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처럼 아시아 개도국들은 민자SOC사업에 외국업체들을 대거 영입할 태세다.

사업분야도 발전시장 위주에서 도로 항만 등 다른 분야로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발주정부가 당초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리스크가 크다는
점.

태국정부는 일본업체가 시공 및 운영권을 가진 도로건설사업에서 당초
계약과 달리 통행료를 크게 내리도록 지시했다.

필리핀과 인도도 발전소프로젝트에서 수차례 계약을 파기했다.

이들 국가에 자본투자로 진출하려는 건설업체들은 계약조건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발주정부의 의지를 확인해야만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 유재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