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경기가 꺼지며 나타난 90년대의 헤이세이불황기.

제3섹터란 방식에 의한 회사설립은 일본에서 붐을 이뤘다.

뒤처졌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균형발전을 가져올수 있는
묘책으로 여겨졌다.

제3섹터는 한국에서도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활성화를 위해
적극 고려되거나 민자(민자)유치등의 이름으로 실제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제3섹터기업이 경영파탄에 빠지면서 이 또한
녹슨 보검 이 될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겨나고 있다.

제3섹터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제1섹터)와 민간기업(제2섹터)이
공동출자로 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를 말한다.

주로 지자체나 금융기관에서 자금.행정등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에서
자금.경영노하우를 보탠다.

이같은 양자의 결합에 의해 시너지효과를 얻자는데 기본 취지가 있다.

최근 경영파탄에 빠진 제3섹터는 이즈미사노 코스모폴리스사.

간사이국제공항을 마주보는 황무지언덕을 개발하기 위해 오사카후와 6개
시중은행 4개 건설회사등이 출자, 87년 설립한 회사다.

다이와은행을 간사로 하는 은행단은 회사설립때 25억엔을 출자한
후 다시 5백50억엔을 융자해줬다.

여기에 오사카후의 융자액 70억엔이 합쳐져 총 융자금액은 6백20억엔으로
부풀려졌다.

당초 황무지의 개발목적은 첨단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연수시설을
유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블붕괴에 따른 불황의 여파로 입주할 회사를 한 개도 유치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반면 용지매입은 그대로 진행됐다.

결국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지출해야 하는 이자만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고 96년3월 사업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제3섹터에 참여한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오사카후가 주도적으로
나선데다 이즈미사노시 시장이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여러가지
심사과정에서 엄정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의 지적은 제3섹터의 실패요인을 가장 정확하게 꼽고 있다.

관에서 지원을 하되 지나친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럼으로써
민간기업의 경영노하우에 따라 회사가 이끌어져야 한다는 본래의 취지가
훼손됐다는 얘기다.

관이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민이 의존적으로 매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채권은행단은 코스모폴리스의 기업유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오사카후에 전면적인 지원을 기대했다.

오사카후에서도 자신들이 주도적인 입장에 있다는 뉘앙스를 어렴풋이
내비쳤다.

그러나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업완성에 나서고 싶다"던 당시의 애매했던
표현은 부도액수가 천정부지로 확대되면서 "그것은 말그대로 주도적인
입장일 뿐 모든 채무를 책임진다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식의 발뺌으로
변했다.

오사카후는 재정지원(약2백억엔)으로 용지를 매입,공단으로 전용하되
코스모폴리스사는 매각대금으로 채무의 일부분이라도 변제한다는
해결안을 내놨다.

그러나 변제되지 않는 원금(약4백20억엔)과 이자에 대해서는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채권은행단은 이에대해 어불성설이라고 펄쩍 뛰고 있을 뿐이다.

코스모폴리스는 ''관의 지나친 관여로 인해 파산으로 가는 대표적인
제3섹터''가 되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 이같은 제3섹터의 경영파탄사례는 앞으로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쿄도나 중앙정부가 주도한 많은 제3섹터기업들이 한결같이 부지확보가
원만하지 않거나 경영악화상태에 빠져있다.

안그래도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부실채권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금융
기관들에는 반쯤 기울어진 제3섹터가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