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사이버'' 시대다.

정보통신분야는 다음세기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결정의 장이라는 얘기다.

정보통신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기대와 투자는 선진국뿐만 아니다.

몇몇 개도국들도 산업혁명에 뒤져서 당했던 수모를 떨쳐버릴 호기로 보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이버전쟁''이라고 불리는 정보통신경쟁은 이미 정보통신분야의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을 넘고 있다.

나라마다 지역정보통신센터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동남아의 ''사이버센터'' 자리를 놓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벌이고 있는
치열한 경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한국 일본 중국간애도 이 지역의 정보통신센터 기능을 둘러싼
경쟁이 불가피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간의 ''사이버전황''에 대해 알아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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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와 동남아의 맹주자리를 노리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가 손잡았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인근에 세계 최첨단의 정보통신기지를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연초 이런 보도가 나왔을 때 말레이시아의 이웃 싱가포르에는 비상이
걸렸다.

싱가포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남아의 금융 교역 정보통신의 센터.

싱가포르는 21세기 사이버전쟁의 승리도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싱가포르로선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행기로 불과 1시간거리권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수도를 새로운 기지로 지목했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빌 게이츠가 작년 7월 동남아 지역본부를 콸라룸푸르에 두겠다고 밝혔을
때도 싱가포르는 "설마"했었다.

빌 게이츠가 세계에서 도시경쟁력이 가장 앞선다는 싱가포르를 버리고
말레이시아로 갈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21세기 멀티 미디어 회랑"구상으로
빌 게이츠를 단번에 감복시킨 것은 분명 예삿일이 아니었다.

이 구상은 콸라룸푸르 남부에 길이 50km, 폭 15km의 벌판에 이상적인
정보통신센터를 만든다는 것.

말레이시아는 사이버기지를 통해 노동집약적인 자국의 산업구조를 일거에
지식집약형으로 바꾼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는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지금까지 추구해왔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을
말레이시아가 그대로 복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싱가포르로선 경제전쟁선포나 다름없이 받아들여졌다.

이광요 전총리는 최근 싱가포르대학 강연에서 "우리는 말레이시아의
도전에 과감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웬만한 일에 직접 나서지 않는 이전총리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마하티르의
도전이 싱가포르에 준 충격의 강도를 말해준다.

현재 상태론 싱가포르의 걱정은 지나친 노파심 일수도 있다.

기술인력과 도시인프라 수준을 비교해보면 말레이시아는 아직 싱가포르의
적수가 못된다.

말레이시아의 사이버회랑계획은 싱가포르에 오히려 상승작용을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렇지만 마하티르의 야심은 싱가포르를 겁주기에 충분하다.

뭣보다 이 사이버회랑구상에 자문역으로 초빙된 면면들부터 그렇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서 올라클사의 랠리 엘리슨대표, 휴렛 팩커드의
류 프랫 회장,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 네트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의
짐 바크스대일과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스콧 맥닐리회장 등 말그대로
사이버업계의 대부들이 거의 전부 마하티르의 편에 섰다.

마하티르 총리는 이들을 자문역으로 모심으로써 이들이 이끄는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파생효과까지 노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말레이시아는 다국적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세혜택은 기본이고
외국전문가들을 필요한대로 고용하도록 외국인고용 촉진법까지 만들었다.

이런 추진력은 집무실 책상에 2대의 고성능 PC를 놓고 인터넷으로
지방장관에게 지시공문을 보내는 마하티르총리이기에 가능하다.

< 이동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