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경=김영근 특파원 ]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나를 의식하지 말고 정책을 펴되 내가 죽고난 뒤엔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의식하고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19일 밤 사망한 등소평이 강택민 중국가 주석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한 충고
이다.

생전의 등은 자신이 중국대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식한 탓인지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 여러 변화를 이런 말로 정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충격을 줄이면서 자신이 주창해온 "개혁개방경제"가 변질되지 않고 성공하길
염원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희망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가파른 물살을 가르고 달려온 등경제가 이젠 어떤 형태로든 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등소평시대 18년동안 중국은 1천8백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연간 10%이상의 고성장을 계속해왔다.

지난해말에는 외환보유고가 1천50억달러를 넘어선 "부자국가"가 되었다.

이런 경제성과는 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존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

교통수단에 대한 대외경제정책 변화가 그 한 예이다.

중국당국은 그동안 외국기업과 자국의 업체가 공동으로 2백~5백km 정도의
중단거리에서 운수사업을 하는 것을 적극 권장해왔다.

적어도 등이 살아있던 이 순간까지는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변화의 신호탄이 벌써 올랐다.

중국당국은 20일 비공식적으로 각 지방 성과 시에 내려보낸 공문에서
"3월부터 6월말 사이에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운수사업 신청서를 접수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앞으로 외국기업과의 합작운수사업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같은 공문은 등시대에는 "권장"하던 정책이었으나 등사망을 고비로
"억제"로 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룻 사이에 전혀 다른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원태 중국한국상회 회장(금호그룹 중국본부 부사장)은 "운수사업을 하지
말라는 공문은 사소한 정책변화일수 있다"며 "등사망을 기점으로 중국당국이
그동안 유치에 열을 올렸던 자동차와 에틸렌 정유사업 등 대형프로젝트사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이 중국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할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충한다.

김종학 삼성물산 북경지사 상무도 이에 같은 의견이다.

김상무는 "앞으로 얼핏보면 중국 경제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
지겠지만 기존 정책에 대한 재평가과정에서 물밑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장위주로 짜여진 9.5(96~2000년) 계획을 안정정책으로 전환한다고 할때
신규 사업의 인허가나 비준은 크게 지연될 여지가 있다는게 김상무의 분석
이다.

이 때문에 "담담한 자세"로 등사망을 맞되 지속적으로 당정 군 등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수 (주)선경 중국본부 부사장도 "중국내 각 지사를 점검해본 결과 아직
큰 동요나 소요 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강택민 체제가 견고히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다소의 변화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제15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중국권력 핵심층의 암투가
벌어지고 내년 상반기로 임기가 끝나는 이붕현 총리의 자리를 놓고 각 계파
간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권력 내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 정치 군사 등의 변화를 감지
하지 못하면 결국 자사가 노리는 특정사업의 고지를 선점할수 없다는게
주중투자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재선 북경대 교수(중국경제발전)는 "단기적으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방심했다가 의외로 큰 충격을 받을수 있다"며 "중국내 각종 변화의 정보를
자사내에서 공유하고 한국기업간에 원활하게 융통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