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반환 5개월을 앞둔 홍콩기업계는 지금 "리스트럭처링"이 한창이다.

리스트럭처링의 목적은 경쟁력강화가 아니다.

태평양을 향해 뻗어나가던 사업의 중심을 중국 대륙의 품에 안기는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치질서변화속에 살아남기위한 발빠른 변신이다.

그동안 홍콩기업계에서 발언권이 컸던 홍콩은행 자딘매디슨, 스와이어 같은
영국계기업들의 목소리는 이제 쑥 들어갔다.

대신 중국과 조금이라도 끈을 맺고있는 기업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같은 업계 친중국화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회사는 "시틱퍼시픽".

중국 시틱그룹의 홍콩지사격인 회사다.

총책임자인 래리 융(중국 시틱그룹 창업자인 영의인 현중국부주석의 아들)
이 홍콩기업계의 거물중의 거물로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시틱퍼시픽이 우선 노리는 것은 홍콩의 기간산업들.

지난해 홍콩 양대 항공사인 드래곤에어와 캐세이퍼시픽에 지분을 참여한데
이어 굵직한 기간산업들을 하나씩 하나씩 확보해 나가고 있다.

지난달 28일의 "홍콩전력(CLP)"인수는 홍콩의 기간산업지배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홍콩전력은 이라크-유대계 가문인 카두리가가 소유하는 독점회사.

홍콩의 전력수요가 늘지 않고 중국쪽으로의 전력공급도 시원치 않자 시틱에
20%의 지분을 넘겼다.

중국의 기간산업확충투자에 참여시켜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수
없었던 탓이다.

카두리가가 아직 28%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업계에선 경영권이
이미 시틱퍼시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의 독점기간산업중 시틱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기업은 이제
홍콩텔레콤이 유일하다.

시틱은 8%의 지분만 갖고 있다.

아직은 영국계기업인 홍콩텔레콤은 그러나 곧 잡아먹힐게 뻔한 시틱의
다음 사냥감일 뿐이라는게 재계의 예상이다.

다른 홍콩 기업들도 중국과의 관계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홍콩기업이 태평양무역의 중심지라는 얘기는 이제 공허하게 들릴 정도다.

홍콩 최대재벌인 리카싱도 최근 "홍콩일렉트릭"을 매입, 중국투자를 위한
지주회사소속으로 넘겼다.

중국과의 유대강화를 위해서다.

홍콩 금융가에선 시틱의 홍콩전력인수가 헐값에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
되고 있다.

카두리가에서 중국의 환심을 사기위해 값을 낮춰 받았다는 설이다.

뿐만아니라 시틱의 자금거래가 변칙적으로 이뤄지는등 다른 회사의 인수
과정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얘기가 많다.

홍콩기업과 중국기업의 유대관계강화가 당장은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
을 미치고 있지만 이런 의혹스런 거래가 계속되는 한 조만간 홍콩 금융시장
은 불안해질 것이란 견해도 팽배하다.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홍콩을 자유경쟁과 기회균등의 시장으로 유지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비평가들은 이것이 말뿐이라고 비난한다.

홍콩 제2의 항공사인 드래곤에어가 시틱의 품에 안긴 직후 대만으로의 취항
허가를 받을수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홍콩의 경제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외교적 약속은 문자그대로
외교적 수사에 그칠 것이란게 홍콩재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