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업계에 "도박" 비상이 걸렸다.

"날으는 라스베이거스를 즐기세요"라는 유혹적인 광고아래 각국 항공사들이
기내도박기를 설치, 고객유치에 나서자 미 업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94년 개정된 미 연방법에는 미국 항공사들의 기내 도박이 금지돼 있기 때문
이다.

최근들어 싱가포르항공, 스위스에어, 브리티시에어웨이 등 내로라 하는
항공사들이 기내도박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미 항공업계의 냉가슴앓이는
더욱 심해졌다.

그럴만도 하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기내 도박장이 항공업체에 연간 4억8천만달러의 추가
이익을 안겨다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항공사의 수익호전은 물론 가격인하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갈수
있다.

미 교통부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기내에 도박게임기가 설치되면 꼭 하겠다
는 응답이 5명중 1명에 달했다.

여론조사를 차치하고라도 기내도박의 "인기"는 이미 입증이 끝난 상태다.

세계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싱가포르에어라인은 지난 80년대초 이 제도를
도입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나치게 "열광적"인 고객들의 호응이 오히려 문제였다.

모든 승객들이 도박을 하기 위해 뒤편으로 몰려들었고 복도는 기다리는
승객들로 꽉차 기내 질서가 엉망이 돼 버렸다.

슬롯머신도 "지나친 노동" 때문에 며칠이 멀다고 고장나기 일쑤였다.

싱가포르에어라인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슬롯머신을 뜯어내야 했다.

최근 항공업체들이 일제히 좌석별로 "개인용 스크린"을 설치해 도박을
즐길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부작용은 빼고 승객들의 인기만 챙기기 위한
조치다.

이쯤되자 미 항공업계도 의회에 법을 개정토록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미 항공업계의 대표적 이익단체인 항공운송협회 관계자는 "미국 항공업계의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강력히 맞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직 미국인들의 정서는 반도박쪽에 기울어져 있다.

미국 반도박운동가들의 기세는 등등하다.

이들은 미국이 한해에 총 5천5백억달러를 도박이라는 "못된 습관"에 날리고
있다며 기내도박 설치를 강력히 견제하고 있다.

의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기내도박의 문제점은 많다.

우선 사행심리 조장이다.

안전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내도박이 본격 도입되면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도박 관련 서비스에
매달리게 될게 뻔하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안전관리에는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재미있는건 스위스에어와 알리탈리아 등 각 항공업체에 기내 도박기를
개발해주는 업체는 미국기업(플라이트테크놀로지사)이란 점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승객들이 도박에서 1백~3백50달러
이상 돈을 잃을 경우 게임을 더이상 못하도록 금지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갖가지 안전장치를 세워놓고 있다"며 기내도박기 설치를 옹호한다.

더욱이 18세이하 미성년자가 앉은 자리에는 도박기기가 작동 자체를
못하도록 조치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해외 경쟁업체에 기내도박기를 설치해줘가면서 고객유치 첨병으로 나서는
자국의 첨단업체들을 바라보면서 미 항공업계는 더욱 애만 끓이고 있다.

< 노혜령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