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시아에선 영화 "대부"를 방불케 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간 경쟁에서 경쟁자를 암살하는 일은 예사다.

공갈 협박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작년에만 수십명의 기업인들이 살해당했다.

여기엔 숙련된 전문킬러들이 동원된다.

이 암흑세력의 대표적인 "두목"이 러시아 최대 재벌이자 국가 안보위
부서기인 베레조프스키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스크바 임업대학 졸업, 수학 박사, 과학아카데미 연구원...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베레조프스키는 지난 89년 구러시아 붕괴이후
자동차 판매회사인 로고바즈를 설립, 사업에 뛰어들었다.

1년이 못돼 로고바즈는 러시아 최대의 자동차 판매회사가 됐다.

그뒤 그는 사업영역을 금융 에너지 항공 광고대행 언론 등으로 확장시켰다.

이제 로고바즈는 러시아 경제의 50%를 좌우한다는 7대 재벌그룹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베레조프스키의 거침없는 성공은 전적으로 갱단과 권력을 앞세운 밀어
붙이기의 덕이다.

러시아 제일의 자동차메이커 오토프바즈사의 4천8백달러짜리 "라다" 모델은
로고바즈를 통해 7천5백달러에 팔리고 있다.

중간 마진은 물론 로고바즈가 챙긴다.

로고바즈가 돈을 긁어모은데는 러시아의 엄청난 인플레도 한몫했다.

인플레가 한창일때는 한달에 20%씩 물가가 뛰었다.

대금지불을 세달만 미뤄도 차량을 반값에 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로고바즈를 통하지 않은 차량의 경우 만신창이가 되어 구매자에게
인도되기 일쑤다.

앞유리가 산산조각나거나 타이어가 난도질당한채.

그렇다면 이들은 왜 무법자의 횡포앞에 침묵하는가.

베레조프스키 사단의 한쪽 손엔 자동차 회사 고위간부를 구슬릴 돈다발이,
다른 손엔 반발세력의 머리통을 겨눌 총이 들려있다.

그러나 정작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이 "대부"라 칭해지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최근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베레조프스키는 "나는 결코
마피아가 아니며 서방언론들이 러시아 기업을 매도하고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종종 "피의 종말"을
맞곤 했다.

각종 이권과 관련된 굵직한 테러사건마다 항상 그가 배후자로 지목된다.

그렇다고 베레조프스키가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이유는 돈이다.

베레조프스키는 정치권에 엄청난 돈줄을 대고있다.

지난 옐친대통령의 재선에도 그의 자금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곧 국가 안보위 부서기로 발탁됐다.

그가 주최하는 만찬 초대는 옐친대통령의 이름으로 보내진다.

최고위층의 절대적 신임을 등에 업은 베레조프스키를 경찰이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베레조프스키는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정부안에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데 누가 그를 정죄할수 있겠느냐는 의미다.

뿌리깊은 정경 유착,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나는 혈투, 이것들이
왠지 낯설지 않은 것이 기쁜일은 아니다.

< 김혜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