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12월 뉴질랜드 도널드 브래시중앙은행총재와 재무부장관이
한자리에 앉았다.

"정책목표협정서(PTA)"에 서명하기 위해서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실제 내용은 중앙은행총재의 고용계약서.

계약기간은 5년.

통화관리권한을 전적으로 주겠지만 물가를 2%이내로 잡지 못하면 즉각
"해임"할수 있다는 조건이다.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의 관계도 비슷하다.

금융기관들은 중앙은행이 제시한 "룰"만 지키면 모든 일을 마음대로 처리
한다.

완벽한 자율화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별로 없다.

금융시장도 안정되어 있고 금융산업도 경쟁력있다.

뉴질랜드가 처음부터 이같은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4년부터 10여년간 강력하게 추진해온 교과서적인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개혁"의 결과다.

지난 82년 경제위기에 몰린 뉴질랜드는 금리 임금 물가를 전면 동결하는
강력한 규제정책을 구사했다.

이는 그러나 뉴질랜드를 "저성장 고물가"나라로 만들었다.

경제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때문에 경제재건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노동당정부는 84년부터 정반대
의 정책을 폈다.

획기적인 규제완화정책이다.

규제완화는 금융개혁부터 시작됐다.

금융개혁의 두 방향은 "금리.환율자유화"와 "금융자율화".

금리자유화를 위해 금리동결조치를 당장 해제하고 모든 예금과 대출금리
규제를 없앴다.

정부증권발행방식을 강제 인수.할당방식에서 경쟁입찰방식으로 바꿨다.

국채등 정부증권의 발행이율도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도록 했다.

외환자유화조치도 뒤따랐다.

7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때 일부 유보해 놓았던 잔존규제를 모두
철폐했다.

환율제도도 자유변동환율제로 변경했다.

외환위기등 꼭 필요할 때에는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외환시장에 개입할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개입실적은 없다.

"금융자율화"도 병행했다.

우선 은행설립을 자유화했다.

외국인의 금융기관 주식소유제한을 폐지하고 비은행금융기관의 은행전환을
허용했다.

은행설립요건을 대폭 완화했음은 물론이다.

80년대초 4개였던 상업은행이 한때 20개로 늘었다가 인수합병(M&A)등을
통해 현재는 15개가 영업중이다.

이같은 금융개혁조치로 금융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따라서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시스템이 필요했다.

86년과 89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높인 "준비은행법" 개정은 그런 측면에서
이뤄졌다.

93년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맺어진 PTA도 이같은 10년간의 금융자율화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물론 과감한 금융개혁의 부작용도 컸다.

90년대초반까지 금리상승 환율절상 금융기관 부실화가 이어졌다.

개혁이 시작된 84년이후 상당기간 금리는 연15~20%수준의 고금리행진을
지속했다.

자본자유화로 자본유출입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고금리현상을 보이자 환율은
필요이상으로 절상됐다.

금리자유화와 은행신설로 금융기관간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경영불안이 심화됐다.

손실을 커버하기 위해 부동산등 위험이 많은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
했지만 경기부진으로 부실채권이 급증했다.

많은 금융기관이 부실화의 길을 걷기도했다.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뉴질랜드경제는 80년대후반과 90년대초반 세차례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고 실업률이 10%를 넘는등 경제가 불안해졌다.

그러나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개혁은 멈춰지지 않았다.

개혁시작이후 노동당과 국민당이 각각 두번씩 집권하는등 여러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나 시장경제원리를 뿌리내리기 위한 개혁은 계속됐다.

결국 개혁은 성공했고 최근에는 OECD국가중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를 운용
하는 나라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뉴질랜드 금융현황 ]

15개 일반은행이 있다.

은행금융의 특징은 "판매시점 전자자금이체서비스(EFTPOS)"시스템이 잘
발달됐다는 것.

슈퍼마켓 주유소 음식점등에 1만1천3백여개의 단말기가 있다.

판매 즉시 자금이체가 이뤄져 개인은 물론 상점들도 현금취급에서 오는
위험을 줄일수 있다.

보험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규제가 적지만 정부의 보상제도가 잘 되어 있어
손해보험은 거의 발달되지 않았다.

주식시장에는 2백8개의 뉴질랜드회사와 1백49개의 외국회사가 상장돼 있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