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10월 13일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전기자동차 심포지엄 회의장.

한쪽 구석에 전시된 일본 도요타의 전기자동차 "퓨얼 셀 EV"가 참석한
기술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이들의 관심을 끈 것은 차에 내장된 독특한 연료전지.

수소와 산소를 섭씨 80도에서 반응시켜 전기를 끌어내는 첨단 연료전지가
엔진을 대신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충전지를 사용하는 기존 전기자동차와는 완전히 다른 발상이었다.

이 연료전지의 에너지 효율은 60%이상.

기존 엔진의 2,3배에 달한다.

연소를 수반하지 않고 에너지를 얻는다해서 "차가운 불"로도 불린다.

그러나 도요타가 연료전지 개발의 선두주자는 아니다.

연료전지차 시대의 개막 테이프로 끊은 것은 엔진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독일의 다임러벤츠.

벤츠는 지난 96년 5월 이미 두번째 연료전지차를 발표했다.

소위 "넷카-2".

연료전지의 크기를 대폭 줄여 소형화한뒤 미니밴에 탑재한 것이었다.

오는 98년께는 벤츠 최초의 소형차 A클래스모델에 연료전지를 내장한
"넷카-3"를 발표할 예정이다.

양산시기는 2005-2010년.

독일과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업체가 21세기 자동차 기술혁신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양사가 주도하는 자동차 기술혁신의 키워드는 "연료전지"와 그 원료인
"수소".

포스트 석유시대에 차를 질주시킬 2개의 열쇠이기도 하다.

수소는 천연가스처럼 안전한 청정 연료.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차에서 나오는 배기물질은 "깨끗한 물"이다.

지난 60년대 미국 아폴로호의 전원으로 사용될 당시 배출된 물을 승무원들
이 음료수로 사용됐을 정도다.

촉매기술의 진전에 따라 태양등 다양한 원료로 제조될 수 있다는 점도
수소의 매력이다.

도요타측은 이렇게 단언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때 수소연료 시대의 도래는 분명하다"

본격적인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시대가 자동차 산업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오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우선 업계간 벽이 낮아지면서 전기업체들도 자동차 부품업에 뛰어들
것이다.

엔진 업체들은 설땅을 잃게 된다.

"연료전지는 오랫동안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온 기존 부품업체에게나 신규
참여한 전기업체에게나 낯설기는 마찬가지"라는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
텐소 관계자의 걱정에서 부품업계의 위기감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소형화와 코스트 다운이라는 장애가 아직은 연료전지차 실용화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도요타가 개발한 퓨얼셀 EV의 항속거리는 불과 2백50km.

아직은 가솔린차(5백-1천km)에 훨씬 못미친다.

그러나 일단 실용화만 되면 소형.경량화한 연료전지는 자동차뿐 아니라
빌딩용전원, 휴대가전제품등에 광범위하게 쓰일수 있다.

생산업체에게는 "규모의 경제"라는 잇점을 안겨다 주는 황금시장으로
부상하리란 얘기다.

독일인 다임러가 세계 최초로 엔진을 발명한지 1백20년.

이제 세계 자동차산업은 기술경신기를 맞고 있다.

21세기에 차를 어떻게 움직일까.

백출하는아이디어속에서 벤츠와 도요타가 나란히 선두에 섰다.

이들이 내세우는 첨단무기가 바로 수소로 만든 연료전지다.

"차거운 불"을 둘러싼 열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