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PC제조업체들의 경영이 "종합상사"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 각지를 뒤지고 다니며 값싼 부품을 수입하고 이를위해 인력도 재배치
한다.

물류와 재고관리도 종합상사 뺨친다.

변신의 이유는 간단하다.

치열한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PC의 라이프사이클은 통상 4개월.

신기종이 4개월단위로 쏟아져 나오니 한달만 지나도 이미 중고품이 된다.

이런 "단기전"에선 값싼 부품을 제때 조달하는게 승부를 판가름짓는
관건이다.

그래서 "핵심부품만은 일제사용"을 고집해 오던 관행도 무너지고 있다.

일본 최대 PC메이커인 NEC의 경우 데스크톱 PC용 부품의 70%를 해외에서
조달한다.

3년전과 비교해 2배이상 증가한 비율이다.

후지쓰는 해외부품 조달률이 95%에 달한다.

핵심부품인 메모리 반도체도 수입품이다.

"종이포장박스와 매뉴얼을 빼면 모두 수입부품이다" "일본 PC메이커는
이제 단순 조립업체로 전락했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다.

해외부품메이커들의 성장도 일본 PC메이커들의 종합상사화에 일조하고
있다.

부품메이커들이 성장궤도를 탄 것은 2~3년전부터.

일본 기업들이 엔고를 극복하기 위해 합작과 기술이전을 통한 해외진출에
나선게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대만의 에이서, 홍콩의 웡스등 아시아 부품메이커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칩메이커인 미 인텔과 소프트웨어업체인 미
마이크로소프트 주도로 PC부품 규격이 통일된 것도 한몫했다.

부품업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구매"가 핵심업무가 됐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인원을 크게 늘려나가고 있다.

NEC는 해외에 주재하는 부품구입 담당자수를 1백60명으로 지난해보다 40%
늘릴 계획이다.

어느 회사의 어떤 부품이 얼마에 판매되는지 빨리 알려면 그만한 인원은
갖춰야 한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싼 가격을 제시하는 부품메이커와 새로 거래를 트는 자리에서 경쟁업체의
부품구입담당자와 마주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IBM 일본현지법인
관계자)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물류 및 재고관리측면에서도 종합상사적 감각이 드러난다.

IBM 일본현지법인은 각 메이커로부터 개별적으로 수입해오던 부품을
나라마다 5,6개지역으로 모은뒤 일괄 운반한다.

일본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은 아예 부품메이커에 부담시킨다.

회사측은 "판매시기에 맞춰 항공편과 선박편을 적절히 조절해 재고기간을
종래의 3분의 1수준인 닷새정도로 단축, 재고.물류비용을 40%나 줄였다"고
강조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오히려 해외부품수입을 중단하는 업체도 있다.

히타치는 지난 7월부터 대만기업에 위탁해온 PC조립작업을 아이치현
도요가와공장으로 옮겼다.

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에서 조립하는 쪽이 판매와 재고관리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관계자는 "요즘처럼 환율과 부품가격이 급변하는 시기엔 부품조달처
변경에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종합상사의 "동물적 감각"이 PC시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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