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강하게 중국엔 부드럽게"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중국과 일본에 대한 통상
정책을 이렇게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대일 통상정책을 부드럽게 가져 가면서 중국에 대해선 강하게 밀어부쳤던
선거전과는 역전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클린턴 정부는 미국 유권자의 표를 의식, 일본에 대해선 통상압력의 톤을
가능한 낮추었다.

미일 통상마찰이 곧바로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해 수많은 유권자들을
불안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대중 무역적자의 급증하자 인권탄압등 중국내 정치
문제등과 연계해 연일 강압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특히 지난 8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대미 무역흑자를 가장 많이 내는
나라로 떠오름에 따라 양국간의 통상마찰은 극도에 달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선거를 의식한데서 나온 그동안의
"대중국-강경, 대일본-온건"이라는 통상정책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일본에 대해 개방압력을 지속한다는 큰 줄기에는 변화가 없다
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클린턴행정부는 요즘 대일본 통상정책을 강공으로 밀고 나간다는 방침을
거듭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 관계자들은 "우리는 일본의 규제완화 속도에 대해 실망
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규제완화에 대한 의지가 점차 약해지는데 대해 우려
하고 있다"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FRB(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이 최근 일본 대장성을 향해
"규제완화 촉구"를 잇따라 외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에서는 미.일간 자동차 무역분쟁이 한창이던 95년때에 버금가는 정면
대결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치고 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그동안 통상문제를 항상 정치적인 문제와 연계
시켰다.

예컨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반대해온 미국의 비토 이유중
하나가 중국의 인권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요즘 "중국의 WTO가입은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제 클린턴 정부는 중국에 관한한 "정치따로 경제따로"를 강조하는 입장
으로 선회했다.

북경을 방문중인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반체제 인사 왕단의 유죄
판결이 더이상 미.중정상회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더이상 중국과의 통상문제를 정치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말이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도 "거대한 양국이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그러나 중요한 점은 사소한 문제가 양국간
전반적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온건한 발언을 했다.

그는 또 미국이 중국의 WTO가입 전제조건으로 미무역대표부(USTR)가
요구했던 일련의 개방화조치인 이른바 "로드맵(Road map)"이 미국의 공식
견해라기보다는 대략적인 "윤곽"일뿐이라고 한 발 양보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이같은 자세변화는 유럽연합(EU)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

"중국의 WTO가입은 초기에 몇가지 의무조건을 제시하고 가입 이후 점차적
으로 다른 의무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리언브리턴 EU
무역위원회위원장)는 것이 EU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만 무조건 "반대"만 외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레드 버거스텐 국제경제연구소장은 중국문제에 대해 "미국정부는 과거와
같은 고자세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미국이 자국이익 극대화를 위해 중국과 일본에 대한 통상정책 "색깔"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장진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