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제품 메이커들이 디지털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일본의 최대전자제품 유통단지인 아키하바라를 찾아가면 이같은 변화를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 매장에 전시된 많은 제품들이 디지털기술을 채택한 "최첨단"으로
"세대변화"를 직감하게 만든다.

일전자제품의 대명사였던 "워크맨"은 이젠 퇴물에 가깝다.

몇년전 미국시장전문가들은 일본이 디지털기술에 관한한 "후진국"에
속한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일제컴퓨터가 세계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이크로프로세서생산에서 미국등 경쟁국에 뒤쳐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처럼 일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날로그기술
만을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80년대초반 디지털기술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 82년 소니는 일본 최초의 디지털제품인 오디오콤팩디스크를 시장에
선보이는등 디지털기술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이같은 성과가 지금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미 소니 닌텐도등 일전자오락기메이커들이 미국시장에 진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동안 일본을 한수아래로 봤던 미국에겐 일격을 가한 셈이다.

일본업체들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기존 CD롬에 비해 7배정도의
데이터저장용량을 지닌 차세대영상매체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이다.

향후 4~5년동안 DVD플레이어에 대한 수요가 최대 1억2천만대에 이르는등
이 시장의 성장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인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와 마쓰시타는 오는 2000년에 이 DVD 한 분야의 매출목표를 각각
60억달러로 잡는등 DVD시장공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 전자제품의 초경량화.초소형화를 이룩한 디지털기술은 일본업체들로
하여금 세계최소형 디지털 캠코더개발을 가능케 했다.

기존 8mm 캠코더를 대체할 이 디지털 캠코더는 이미 아키하바라를 통해
이뤄지는 캠코더판매출의 40%를 차지할 만큼 인기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카시오사는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카메라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처럼 디지털기술을 채택한 캠코더와 카메라시장은 올해 작년대비 약
6배 늘어난 1백4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오는 2000년에는 1천1백만대로 거의 10배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일본의 복잡한 도로상황과 이면도로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자동차
항법장치, 인체의 지방정도를 체크할 수 있는 기기, 다양한 디지털 핸드폰,
와이드TV, DVD드라이브를 탑재한 PC개발등 한마디로 디지털기술혁명의
후발주자였던 일본이 지금 이 혁명을 앞서 이끌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전자업계의 앞날이 장미빛으로 거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디지털제품개발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에 비해 돌아오는 이익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게 그 이유다.

특히 세계적인 가격파괴추세와 "R&D투자없이 코풀려"는 다른 아시아국의
기타 경쟁사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껏 아날로그기술로 세계전자제품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일본
업체들이 디지털제품분야에서도 성공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