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미국 서부 사막위의 "카지노 타운".

전세계 내로라하는 도박꾼들이 밤낮으로 베팅을 한다.

승자 1명이 판돈을 몽땅 가지고 간다.

나머지는 대부분 쓰린 속을 부등켜안고 내일을 기약하며 떠난다.

라스베가스에서 남서쪽으로 6백km 떨어진 곳.

여기에 또 하나의 카지노 타운이 있다.

이른바 실리콘밸리.

세계 첨단산업의 메카다.

복합계(Complex System)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곳을 "테크놀로지의
카지노"라고 부른다.

"실리콘밸리=카지노"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A,B,C 세사람이 디지탈뱅킹같은 첨단분야에 각각 20억달러씩 투자했을
경우 이익은 투자지분에 따라 나눠지지 않는다.

승자 한사람이 모두 휩쓸어 버린다.

라스베가스의 도박판처럼.

승자가 전부를 지배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DEC(디지털이퀴프먼트사)의 성장스토리는 이를 잘 보여준다.

IBM이 세계 중대형 컴퓨터시장을 장악하며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시절인
72년 DEC는 "PDP11"이란 미니컴(소형컴퓨터)을 내놓았다.

초기시장을 놓친 IBM은 섣불리 미니컴쪽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당시 월가에선 "DEC가 IBM을 먹는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2년뒤인 74년 DEC는 미국 포춘지 선정 5백대기업에 진입했다.

지난 90년에는 27위로 우뚝 올라섰다.

지금은 JAVA(인터넷 프로그래밍언어) 네비게이터(인터넷 검색용 프로그램)
등이 제2의 DEC가 되어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하이테크분야에서 초기시장을 지배하면 모두를 지배한다는
"수확체증의 법칙"은 지금도 계속 적용되고 있다.

그럼 누가 테크놀로지 카지노의 승자가 될까.

라스베가스 카지노는 게임의 룰이 정해져 있지만 테크놀로지 카지노는
게임의 룰이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이 될지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꿰뚫는 능력이다.

"다음에 올 물결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제품이라는 형태로 그 물결을
잡을수 있을까가 중요하다"(브라이언 아더 미 스탠포드대교수)는 지적이다.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단칼 승부를 해야 하는 최고 경영자들은 그래서
늘상 손에 땀을 쥔다.

결국 테크놀로지 카지노에선 미래를 내다보는 최고 경영자들의 혜안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한다.

기술면에서는 뒤떨어졌지만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파악하는 점에서
탁월했던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기술력이 앞섰던 스티브 존스의
애플을 누른 것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빌 게이츠와 인텔의 앤드류그로브회장은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게임수칙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게임의 결과를 꿰뚫어볼수 있는 직관도
가졌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 게임을 지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게임을 압승해도 다음 게임의 승부는 점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게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OS(PC게임운영체계)게임을 주도하던 빌게이츠도 요즘 새 게임인
월드와이드넷(WWW.인터셋 웹 서비스)분야에선 고전하고 있다.

"익스플로어"란 상품으로 네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를 뒤쫏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하이테크시장에서는 영원한 "게임의 황제"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