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대통령이 첫 임기 때 밝힌 대외정책의 기조는 모든 국제분쟁에
미국이 거리의 경찰처럼 일일이 끼어드는 것은 냉전이후 대외정책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평화유지의 큰틀을 만들어 가면서 문제의 내용에 따라 현실적인
미국의 이익이 관계될 경우에만 개입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뜻이다.

대외정책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최고참모인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지난 1월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나토확대, 핵금조약,
미-러시아 핵무기 감축정책(START II), 지구환경보호 등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이익이 관계되는경우를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해야 한다면
크리스토퍼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세계평화유지의 큰틀이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로 볼 때 중동, 한반도, 옛 소련권,
유럽,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은 미국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될 전망
이다.

한반도의 경우 미-북한기본협정을 당초 목표대로 이행, 북한핵을 계속
동결시키고 4자회담과 남북대화를 유도해 남북한간의 대립이 아닌 평화유지
의 골격을 세워 평화통일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 기본정책이다.

이 때문에 지난 9월 잠수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무부는 한국과 동맹
관계라는 차원보다는 미-북한기본협정의 판이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데
집착, 모든 당사자가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가 한국측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북한기본협정을 통해 대북한 관계개선과 북한핵
동결에는 성공했다고 해도 한반도 평화유지의 틀을 구축하는데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남북대화 재개는 물론 4자회담 설명회조차 열지 못하고 있으며 인도적
목적이라지만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8백만달러 이상의 식량지원을
해준 선에서가시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다.

미군유해송환문제는 돈으로 해결했다지만 북한의 미사일개발문제는 아직
현안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과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는 4자회담과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미결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잠수함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평양달래기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한-미간의 대북정책 공조에 틈만 벌려 한국을 대북유화정책에서
강경정책으로 선회시키는 결과만 빚었다.

미국의 미사일개발 중단요구를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북한은
4자회담 제의와 한반도의 불안한 사태를 역으로 활용, 식량지원과 경제제재
완화 등 실리 따내기 외교에 치중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에는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 중동 ]]]

93년과 9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이 체결한 중동평화협정의 틀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최근 팔레스타인 유혈충돌 사태를 막기 위해 백악관에서 긴급중동정상회담
을 열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이라크 미사일 공격과 비행금지 구역확대 조치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앓던 이" 같은 북부의 쿠르드족을 평정하는 기회만
제공했다.

꺼꾸로 후세인 대통령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킨 결과가 돼 클린턴 행정부
의 대이라크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화당은 후세인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징벌을 주장하고 있으나 클린턴
행정부는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현상유지로 두번째 임기를
끝내겠다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갈 것 같다.


[[[ 유럽 ]]]

단기적으로 보스니아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화해설득과 평화유지군
유지라는 현재의 정책을 계속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나토의 확장에 큰비중을 둘 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굴레에서 벗어난 동유럽을 비롯한 옛 공산권 국가들의 영입을
통해 나토가 유럽 평화유지체제의 기본틀로 기능하도록 한다는 것이 클린턴
대통령의 대유럽정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옛 소련권에 대한 정책은 미국의 현저한 국익과 세계평화의 틀이라는
두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것이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회귀를 막고 핵무기 감축정책을 추진하며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의 핵무기를 가진 신생국과 유대관계를 강화한다는 방향이다.


[[[ 일본 ]]]

미군 5만명이 주둔하고 있는데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가장 크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현실적 국익이 가장 크게 걸린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미-일기본협정을 체결, 미군의 일본주둔에 따르는 문제와 평화-
전시작전임무 등에 합의했고 반도체협정을 비롯한 21개의 무역 및 경제관련
협정을 새로 맺거나 수정체결해 대일 수출을 늘리고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러한 기조 위에서 후반 임기 4년간을 끌어갈
전망이다.


[[[ 중국 ]]]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냉전이후 미국말고 또하나의 초강대국이
출현한다면 바로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련이 해체된 현재 이러한 초강대국으로 출현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 몽골, 러시아를 비롯해 옛 소련에서 독립한 CIS
국가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포위정책이라고 풀이하는 관측통들도 있다.

이 문제는 클린턴 행정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역대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세계전략이라는 차원에서 같이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단기적인 대중국정책은 일부 경제문제에서는 강경입장을
보이더라도 기타 외교면에서는 협력체제를 유지해 나갈 전망이다.

이같은 기조는 첫 임기때의 연장선상에서 계속될 것 같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인권문제와 미-중 교역문제를 연계시킨다는 입장
이면서도 지난 5월 최혜국대우(MFN)를 연장해줬다.

핵금다자조약과 한반도 4자회담 성사 등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크게 필요
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서는 지적재산권 침해 등 일부 경제차원에서는
강경정책을 구사하더라도 기본틀은 대외정책의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정책기조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러나 중국의 핵기술 수출은 핵무기 확장방지를 위해 무슨일이 있더라도
막겠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냉전이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끌어 나갈
클린턴 대통령의 제2기 대외정책은 세계평화체제 구축작업과 통상압력 가중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4년간 한반도, 중동, 보스니아문제는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다음 행정부로 넘겨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