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칩과 전자부품의 절도.불법유통문제가 전세계 반도체메이커와 전자
부품업계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 94년 현재 칩및 전자부품의 전세계적인 도난피해규모는 80억달러.

이중 대부분이 컴퓨터칩에 해당된다.

이같은 수치는 세계 최대 반도체칩메이커인 인텔의 6개월간 매출액과
맞먹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만 하더라도 일주일동안 1백만달러 상당의 컴퓨터칩과
전자부품이 도난된다.

어메리칸 인슈어런스 서비스그룹은 지난 95년 보고서에서 관련업계가 향후
4년동안 컴퓨터칩및 전자부품절도로 2천억달러이상의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죄대상지역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80년대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극성을 부리던 컴퓨터
칩범죄가 이젠 아시아지역으로 확산된 상태다.

특히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중국 홍콩등 동남아시아가 그
중심지다.

전자부품과 마이크로칩절도가 어느새 이들 지역의 악성 "성장산업"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싱가포르의 첩 인슈어런스그룹 마크링가펠트부사장은 지난 18개월동안
아시아지역에서 50만달러의 칩이 도난당했다고 말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말레이시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페낭지역에 소재한
5개기업이 30만달러어치의 칩을 도둑맞은 것으로 신고했다.

불법적으로 유통된 칩은 그대로 사용되거나 대개 가짜 레벨이 부착돼
컴퓨터조립업자에게로 넘겨진다.

한예로 원래 가격이 2백4달러짜리이며 처리속도가 1백33메가헤르츠인
인텔 펜티엄에 1백66메가헤르츠짜리 고가레벨을 붙여 몇배이상으로 팔아
넘기는 것 등이 불법거래자들의 전형적 수법이다.

대만산 PC에 사용된 D램칩 대부분과 마이크로프로세서중 30%이상이 불법
유통된 제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대북의 한 전자부품유통업자도 "대만산 컴퓨터에 내장된 D램중 20%
이상이 도난품"이라고 주장한다.

홍콩에 소재한 인텔 아시아.태평양지점장인 숀 멀로니씨는 매년 수백만
달러의 인텔칩이 이렇게 불법유통된다고 얘기한다.

지난 3월에는 홍콩세관이 한 가짜레벨부착공장을 급습, 65만달러 상당의
인텔칩을 수거하기도 했다.

올해들어 대만과 홍콩 중국등에서만 39명의 가짜 레벨부착업자들이 검거
됐다.

이들이 불법 유통시킨 인텔칩은 수천개.

금액상으로는 1백3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컴퓨터칩절도로 인텔이 입은 총손실액은 1백
90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인텔뿐만이 아니다.

후지츠, 히타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어드벤스트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
에이서등도 수난을 당하기는 매한가지다.

다만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엔 직원들이 칩을 슬거머니 주머니에 챙겨 나가는 수준이었으나 최근
에는 전문절도조직까지 생겨났다.

지난 4월 미연방범죄수사국(FBI)과 경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칩절도행위를 포착, 40명의 범인들을 소탕했다.

수사결과 이들은 말레이시아의 칩절도조직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같은 첨단부품의 절도범죄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데 있다.

관련업체들이 경비강화등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속탐지기나 X레이기로 칩및 전자부품제조현장 직원들의 소지품을 검사
하기도 한다.

비디오감시카메라도 동원된다.

대만 최대의 반도체칩 제조및 컴퓨터 조립업체인 에이서는 심지어 첨단
전자저울을 설치, 오가는 화물들을 낱낱이 체크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집안단속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피해업체들이 도난사실을 적극적으로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이미지 손상, 보험료지급문제, 신고후 또 다른 절도목표가 된다는
불안감등이 주요 이유다.

여기에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일반절도죄를 적용,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는
점이 이 문제 해결의 큰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홍열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