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10월 세계 최대잠재시장인 중국 북경에서는 중국 최초의
디지털휴대전화 네트워크 구축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여기서 시범전화를 거는 중국 정부관계자의 손에는 핀란드 "노키아"제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세계 디지털 이동통신시장에서 GSM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알리는
순간이었다.

GSM은 세계이동통신시스템(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의
약어.

시분할다중접속인 TDMA방식의 하나이다.

GSM방식은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과 핀란드 노키아 등 유럽통신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제패하자며 의기투합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처음부터 판매대상은 "세계시장"이었다.

그리고 탄생 3년만에 이동통신의 "사실상 업계표준(de facto standard)"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물론 이 타이틀 매치의 도전자가 유럽뿐은 아니었다.

유럽업체들이 GSM을 내놓던 92년 1월께 일본 업체들도 세계시장석권을
노리며 PDC방식의 이동통신 시스템 상용화에 착수했다.

그해 7월, 일본은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9개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PDC판촉에 나섰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상용화 개발시기는 엇비슷했지만 마케팅에 뛰어든 것은 유럽측이
1년여 빨랐다.

이번 싸움의 성패를 결정짓는 거대시장 중국은 이미 GSM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실 일본은 PDC의 기술적 우월성만 믿고 자신만만했었다.

주파수효과 등 여러면에서 GSM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남짓 늦은게 PDC를 영원히 시장에서 "아웃"시켜 버렸다.

시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기술만 팔면 된다"는 일본측의 자세가 어찌보면 더 큰 문제였다.

개도국의 입장에서 기술적 우월성은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사업화와 운영노하우 이전이 최대 관심사이다.

이동통신 시스템 전체를 패키지 상품으로 팔겠다는 GSM쪽이 아시아
각국의 마음을 적중시킨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GSM방식 통신사업자의 모임인 "GSM합의서 그룹"은 GMS를 승리로
이끈 마케팅의 백미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이 단체는 사업자에게 정보
제공과 각종 조언을 해 준다.

요금설정, 가입자가 해외에서 전화를 사용할 때의 상대사업자와의
요금수입배분, 가입자 증대방안, 최신 GSM기술동향, 효과적인 요금징수
방법 등을 사업자들에게 때때로 컨설팅 해주는게 이들의 주임무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업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개도국 통신업자들로서는
굉장한 매력인 셈이다.

이런 마케팅 우세를 타고 GSM은 세계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노키아는 북경을 필두로 상해, 복건성에서 GSM시스템을 수주했다.

에릭슨도 료녕성, 광서훈족자치구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 GSM방식은
중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

GSM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회원국에서 홍콩, 대만, 인도, 베트남
까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전지역을 장악해가고 있다.

미국에서도 GSM의 파생규격인 DCS-1900 서비스가 일부 지역에서
시작됐다.

GSM방식의 가입자는 95년말 현재 전세계 80개국의 1천2백만명에
달한 것으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추산하고 있다.

5천만 세계 휴대전화가입자의 20%에 달하는 숫자다.

그러나 이동통신의 업계표준 싸움이 아직 끝난것은 아니다.

CDMA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하면서 GSM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미 퀄콤 등이 개발한 이 방식은 채널당 가입자 수용능력이 월등하고
문자정보 등 멀티미디어 매체로 적합하다는 등의 기술적 우월성을
앞세워 세계 시장 평정을 호언하고 있다.

최근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결정했으며 최근 미국 홍콩
등에서도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등 날로 기세를 높이고 있다.

이제 세계 이동통신전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유럽대 일본간 1라운드 싸움이 유럽의 완승으로 돌아갔다면 2라운드는
미국을 도전자로 한 유럽의 타이틀 방어전이다.

이 싸움은 완승 아니면 완패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몰고 온다.

이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변수가 많다.

기술적으로만 우월하다고 이기는게 아니다.

제품은 떨어지는데 마케팅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황금시장 이동통신분야에서 업계표준 싸움이 스릴을 더해가는
것도 이때문이다.


[[ 용어해설 ]]

디지털 휴대폰방식은 시분할다중접속(TDMA)과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의
두가지 방식이 있다.

TDMA는 분할된 채널을 통해 디지털신호를 보내되 이를 시간적으로
분할하는 기술로 유럽의 GSM이나 일본의 PDC가 모두 이 방식이다.

CDMA는 10~20가지의 디지털 신호에 각각코드를 부여해 하나의 채널로
내보낸 다음 이를 받아 각 코드별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가입자 수용
능력이 아날로그 방식의 20배에 달하며 멀티미디어 통신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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