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후 독일은 산업활동이 둔화되고 범죄가 급증하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독지역은 국민총생산이 꾸준히 늘어나고 1인당 국민소득도
증가하는 등 동.서독간 격차가 미미하나마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장벽이 무너진뒤 동독인구의 8%(125만6,000명)가 서독으로 이주, 실업률이
급등하는 등 몸살을 겪었으나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통일독일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독일통일 전후경제사회상 비교''자료의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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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경제

서독의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81~91년중 2.5%에서 92~94년에는 0.8%로
하락했다.

그러나 동독은 92~94년중 서독의 10배에 달하는 연평균 7.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서독지역의 희생이 큰 힘이 됐다.

서독의 재정수지 적자는 87~90년 4년간 합계가 1,662억DM(도이치마르크)
이었는데 통일후 91~94년의 독일전체 재정적자는 이의 2.8배에 달하는
4,641억DM 으로 확대됐다.

독일전체의 94년도 부채총액은 1조6,040억DM으로 90년 서독의 부채
1조488억DM보다 5,553억DM이 늘었다.

또 독일전체의 대외순자산은 90년 5,330억DM에서 94년6월 3,354억DM으로
축소됐다.

서독의 경상수지는 89년 1,081억DM의 흑자를 기록하며 상승추세에
있었으나 90년 통일독일은 이보다도 적은 757억DM의 흑자를 기록했다.

91년부터 93년까지는 3년간 연속해서 모두 988억DM의 적자를 냈다.

95년 독일의 물가는 91년에 비해 14.8% 상승, 3년간 연평균상승률이
3.5%를 기록해 국민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했다.

이는 통일전 서독의 86~90년 연평균상승률 0.9%의 4배수준에 달하는
것이다.

조세및 준조세가 GN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조세부담률도
94년 42.2%로 90년 서독의 38%에 비해 4.2%포인트 높아졌다.

동.서독의 실업률도 높아졌다.

서독의 실업률은 90년 6.3%에서 93년 7.2%로 높아졌고 동독은 92년
17%에서 93년 18.3%로 올랐다.

기업들도 통일비용을 치렀다.

86~90년 서독 대기업체의 자본에 대한 부채비율은 277%에서 91년
307%로 높아져 그만큼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같은 기간동안 연평균 자본에 대한 당기순이익률은 8.1%에서 6.7%로
하락했다.

또 지급불능(부도)건수는 서독이 90년 1만3,271건에서 94년 2만92건으로
51.4% 증가했고 동독은 91년 401건에 불과했던 것이 94년 12.1배에 달하는
4,836건으로 늘었다.


<> 사회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개인들의 장래가 불투명해지자 혼인과 출산이
감소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서독의 혼인건수는 50년 53만6,000건에서 93년 39만3,000건으로 26.6%
감소했는데 통일전 40년간 0.6%이던 연평균감소율이 통일후 3년간 1.7%로
많이 높아졌다.

동독도 같은 기간동안 감소율이 1.9%에서 21.5%로 대폭 높아졌다.

89년부터 93년말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은 모두
125만6,000명으로 93년 동독총인구의 8%에 달한다.

반면에 90년9월부터 93년말까지 서독지역에서 동독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은 32만9,000명으로 93년 서독총인구의 0.5%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이주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반해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이주는 꾸준히 늘고있어 대조를 이룬다.

산업별취업자구성비를 보면 서독에서는 광공업취업자비중이 90년
32.2%에서 94년 28.5%로, 동독에서는 91년 31.1%에서 94년 19.25%로
낮아졌다.

이는 산업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것과 함께 동독인들이 광공업의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해 실업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통계청은 풀이했다.

통일후 첫해인 91년 월소득 2,500DM미만의 저소득층이 1,600만가구
45.6%를 차지했으나 92년 41.5% 93년 38.6%로 낮아지고 있어 가구소득의
불평등도 줄어들고 있다.

동독지역에서 91년 996억DM이던 사회보장급부총액이 94년에는 배가
넘는 2,062억DM으로 급격히 늘어 그만큼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됐다.

또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동독의 승용차대수도 89년 390만대에서
92년 700만대로 급증했다.

그러나 노동쟁의는 격화되고 범죄도 늘고 있다.

서독에서 90~94년중 연평균 쟁의발생사업장수는 933개소 쟁의참여자수
29만6,000명 노동손실일수 47만2,682일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89년의
3배, 6.7배, 4.7배에 각각 달하는 것이다.

독일전체의 범죄는 91년 530만건에서 93년 675만건으로 27.3%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 산업활동

통독이후 독일의 전반적인 산업활동은 후퇴했다.

특히 기대감이 지나쳐 상품재고가 급증하거나 주가가 급등했다 하락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건설업종은 통일전은 물론 통일이후에 더욱 호조를 보였다.

제조업 순생산지수는 85년을 100으로 볼때 서독은 82년 92.3, 90년
118.3, 93년 111.2로 통일전에는 상승세를 보이다가 통일후 내림세로
돌아섰다.

동독도 90년 하반기를 100으로 볼때 93년 70.5를 기록,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건설업 순생산지수는 서독은 90년 123.7에서 93년 133.2로
지속적인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동독은 93년 157.3을 기록, 상승세가
폭발적이다.

동독에서의 건설업판매액도 91년 272억100만DM에서 94년
770억7,300만DM으로 명목상 2.8배 증가했다.

도소매업종을 보면 서독지역에서 90년에 130억5,200만DM이었던
상품재고가 94년에는 549억8,000만DM으로 4.2배나 늘었다.

상품공급이 213억DM에서 686억DM으로 급증했으나 동독지역의 구매력이
예상에 미치지 못해 그만큼 많은 재고를 떠안게 된것으로 풀이된다.

숙박시설은 서독의 경우 89년 4만7,985개에서 94년 4만4,781개로
6.7% 감소한 반면 동독은 91년 3,807개에서 94년 5,314개소로 증가하는등
서비스업이 급증하고 있다.

금융의 경우 통독직후인 92년 금융기관예금은 전년보다 0.1% 감소한
7,648억4,800만DM을 기록했으나 92년 2.6% 증가세로 돌아선뒤 93년
11.7% 94년 9.4%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반면에 대출은 91년도에 2조2,182억8,700만DM으로 전년보다 10.5%
증가한이후 92년 8.0%, 93년 7.6%,94년 5.6%등으로 점차 증가율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통일초기 자금수요증가로 90년12월 연11.97%였던 당좌대출이자율
(100만DM미만)이 91년12월 연12.95%, 92년12월 연13.66%까지 급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독의 주식가격총지수는 통일에 대한 기대심리로 88년 248.4에서
89년 330.4로 상승했다가 90년에는 통일후에 대한 불안심리로 274.5로
떨어졌다.

93년도에는 건설업 주가의 지속적인 상승영향으로 370.8에 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성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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