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일시적 기복을 보이면서도 초강세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곡물 석유
등 국제원자재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인가.

미국에선 이 문제를 놓고 경제학자 및 전문가들간에 뜨거운 논쟁이 전개
되고 있다.

17개 품목의 원자재값 동향을 나타내는 CRB지수가 올들어 10% 이상 상승,
8년만에 최고수준인 260선을 한달여동안이나 맴돌고 있는 터여서 원자재와
인플레간의 함수관계에 관심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원자재값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직결된다는데 이견이 드물었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산업구조가 달라진 요즘, 반론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것.

원자재값 상승=인플레로 규정짓는 고전적인 견해는 석유와 곡물값 상승분이
기업의 제품제조원가에 반영되면 완성품가격이 상승, 소비자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전문가는 MMS인터내셔널의 연구원 제임스 파디나씨.

그는 4월중소매가가 평균 8.9%나 오른 휘발유값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에
0.2% 인상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차량연료가격이 CPI지수 산출시 전체의 2.9%를 차지하며 차량연료중
휘발유값 비중이 95%이상되기 때문이라는 논지에서다.

미상무부는 4월중 소비자물가지수(CPI)상승률이 0.4%였으며 식품과
에너지가격을 제외해 산출한 물가지수 상승률은 0.1%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원자재값 상승이 물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곡물폭등세와 관련, 식품업체 퀘이커오츠사의 부르스 로스킨스 구매담당
이사는 "생산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 경제학자인 윌리엄셜리번씨는 곡물값 인상으로 관련 제품의 가격상승이
오는 "연말께"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미정부의 경제관련 실세들은 최근의 원자재값 오름세와 물가상승의
비례함수관계에 정면 반박, 올해 물가에 이상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는 원유값은 하절기로 접어들면 떨어질 것이고 곡물값은 과거와 달리
제품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자재값이 인플레에 직접 영향을 끼치려면 현재와 같은 가격
초강세가 서너달정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이같은 입장의 대표자이다.

그는 5년만에 최고치로 솟은 휘발유값이 앞으로 물가상승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이달초 장담했다.

그의 말이 효력을 발휘한 셈인지 미정부가 비축석유를 방출하고 정유업자의
가격담합혐의 조사에 최근 착수하자 휘발유값은 지난주 내림세로 돌아섰다.

백악관의 경제참모 알리샤 무넬도 곡물값 폭등을 대수롭지 않게 본다.

곡물이 관련제품의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가공, 포장, 마케팅비용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식품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6%에 불과하며
식품값중 곡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육류값은 오히려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물가를 낙관하고 있다.

도날드 라타자크 조지아주립대교수는 "원자재값 오름폭이 상당한 규모지만
7조달러규모의 미국경제에선 미미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원자재값 강세가 앞으로 3-6개월
지속된다면 물가상승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데 견해를 함께 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은 지난 한달여간 260고지에 머물고 있는 CRB지수가
얼마나 더 이 고지를 사수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