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주총시즌을 맞는 일본 재계의 최고경영자들은 요즘 인사회오리가 언제
어떠한 형태로 몰아닥칠까 무척 불안하다.

실적부진에 따른 문책으로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코너로 몰리고 있는 회사재건을 위해 회장에서 사장으로 강등(?)되는 수치
를 무릅쓰고서도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거물급 전문경영인인 소니의 회장이자 일본전자기계공업회장
오카노리오(66)는 실적호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가 언어장애를
일으키면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국내시장경쟁격화 해외시장쟁탈전 가열이라는 2중고로 최고경영자자리는
이제 가시방석이 되고만 셈이다.

일본의 사장들은 그동안 큰 하자가 없는한 회장으로 승진해왔다.

은퇴후에도 명예직이나 판매망을 맡아 한동안 어려움없이 생활할수 있었다.

평생고용은 최고경영자에게도 결코 예외적일수 없었다.

이같은 상황이 어느날 갑자기 먼 옛날 일처럼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큰 소용돌이에 빠져있는 곳은 주택금융전문회사(주전)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은행업계.

일본채권신용은행은 최근 마쓰오카 세이시회장(65)을 퇴임시키기로 결정
했다.

마쓰오카회장은 주전문제등 불량채권처리가 진전을 보이지 않자 사임의
길을 선택한 것.

회사주변에서는 대장성출신인 은행장이 창립멤버출신으로서 은행내에
든든한 기반을 갖고 있는 회장을 불량채권 문제를 빌미로 몰아냈다고 보고
있다.

주전문제의 피해당사자인 은행들중에는 일채은외에도 야스다 신탁은행의
다카야마 후지오 회장(70)과 요코하마은행의 대장성 사무차관출신인 다나카
회장(72)등도 조만간 옷을 벗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경제버블기에 회장에 취임한 실력있는 회장들이지만 불량채권처리에
따른 경영실적악화의 책임을 떠안고 강제사직당해야 할 입장이다.

NTT인사도 눈길을 끈다.

NTT의 경우 차기사장자리에 창업사원출신을 발탁하려는 회사측과 낙하산
인사를 통해 "우리사람"을 심으려는 대장성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 인사는 NTT분리 분할문제로 인한 민관갈등에 뒤이은 제2라운드전쟁으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으나 뚜껑을 연 결과 고지마 마사시 사장(65)이 임원
상담역으로 복귀하고 우정성 사무차관출신인 사와타 부사장(64)이 대표이사
회장, 창업사원출신인 궁진순일랑부사장(60)이 사장으로 각각 승진하는
것으로 인사가 일단락됐다.

양측간의 파워게임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만 것.

도시바는 지난 5월28일 결산이사회에서 사토 후미오 사장(67)을 회장으로,
서실태삼전무(60)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

이 인사에서 아오이 조이치 회장(70)이 상담역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차기
경단련회장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단련회장자리는 취임자격에 기업회장이나 사장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작기계회사인 쓰가미, 통신기기업체인 유니덴, 섬유가공회사인 창고정련
등 3사에서는 회장이 사장으로 복귀하는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다.

오야마 류이치 쓰가미회장(58)은 사장으로 복귀, "경영재건의 가미사마
(신양)"로 불리는 선친의 뒤를 이어 흔들리고 있는 쓰가미재건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후지모토 유니덴 회장(60)은 미오라클이 추진하는 "5백달러짜리 PC" 참여
등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오너인 자신의 경영권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사장으로의 강등을 자원했다.

급변하는 경영여건으로 인해 일본재계에서는 앞으로도 예측불허의 파격
인사가 꼬리를 물고 나올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 도쿄=이봉구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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