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증시가 미국 투자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뉴욕주가를 잔뜩 부풀리고 있는 미국의 주식투자자들이 전체 세계증시에
불을 당길 태세다.

세계 각국의 증시에서 미국투자가들이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
이다.

또 최근에는 뉴욕주가의 정점논쟁이 본격적으로 일면서 이 시장에서 잠겨
있는 주식투자자금이 신흥주식시장으로 봇물처럼 빠져나올 조짐도 보이고
있다.

미증권업협회(SIA)가 최근 95년 9월말 현재 미국주식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주식총액을 집계해 본 결과 무려 3천4백69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인들의 외국주식보유규모는 해외투자가들의 미국주식보유액을
훨씬 웃돌아 월가의 전문가들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다.

더욱 이례적인 점은 뉴욕증시의 상승행진과 주식투자금의 대량유출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동안 미국의 주식투자자금 순유출규모는
2백16억달러로 분기별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중 다우존스 평균공업지수도 연일 사상최고치 경신행진을 이어가며
7.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주식투자자들이 국내증시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증시에서도 활기찬
매수공세를 폈다는 증거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SIA의 국제금융전문가들은 "뉴욕증시가 과열 우려를
비웃는듯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미투자가들로선 리스크관리에도 신경을
쓸수 밖에 없다"면서 위험회피를 위한 해외분산투자가 함께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밖으로도 손을 뻗을 수 있는 것은 미주식투자자들의 매수여력이 그만큼
넉넉하다는 얘기다.

미국의 잉여주식투자자금이 1차 타겟으로 삼은 시장은 뉴욕증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은 선진국 증시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지난 연말에는 일본증시가 미투자가들의 표적이었다.

작년 3.4분기중 도쿄증시에서 외국인들의 순매수규모는 1백18억달러인데
이중 미국투자자들의 몫이 5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증시에서는 올들어서도 경기회복이나 주가상승의 뚜렷한 신호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계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는 추세다.

홍콩을 중심으로한 동아시아지역의 신흥주식시장이나 남미의 주식시장에서
미국계 자금의 쏟아져 들어오기는 마찬가지다.

태국 브라질 칠레 등 일부 신흥주식시장에선 시장과열을 우려해 미투자가의
매수열기를 어떻게 잠재울까 고민할 정도다.

미금융전문지 포춘 최근호(발행일자 4월1일)는 미국내 이머징마켕전용
주식형펀드의 수탁고가 지난 1월 한달동안에만 10억달러이상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포천지는 또 "뉴욕증시는 이미 정점에 들어섰다"는 펀드매니저들의 공통된
지적을 전하면서 해외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전망은 뉴욕증시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1년여동안 호황을 누려
왔으나 미경기와 기업들의 실적에 비춰볼 때 앞으로 더 이상 오르기 어렵다
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주식매수에너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주식내재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추가상승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탠다드&푸어(S&P)지수 산정대상 4백개종목의 15일 현재 주당
순자산비율(PBR:주당순자산대비 주가수준)은 30년만에 최고치인 3.5에
이르고 있고, 주가에 대한 배당수익비율은 과거 70년동안 평균치인 4.5%의
절반수준인 2.2%에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주식투자자금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고 있다.

미국내 전체주식형펀드에 지난 1월에 새로 들어온 자금이 2백90억달러로
직전의 월별사상최고치를 57%나 웃돌았고 2월에도 이 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미주식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는 규모도 더욱 증가할 전망
이다.

다음달 1일부터 외국인투자한도를 확대하는 한국주식시장도 넉넉한 미국계
자금이 잔뜩 벼르고 있는 곳의 하나가 될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