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금융당국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경기 침체로 금리인하 압력은 커지는데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 금리를 내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마르크 강세에 따른 수출 및 설비투자 부진으로 작년
3.4분기중 0%를 기록하더니 4.4분기에는 마이너스 0.5%로 곤두박질했다.

전문가들은 올 1.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90년대초 2백만명 내외이던 독일 실업자는 지난 2월 4백27만명으로
늘었으며 실업률은 전후최고인 11.1%에 달했다.

독일 정부는 경기가 침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한스 티트마이어 총재도 경기 부진이 오래 지속
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는 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졌다고 아우성이다.

산업계는 물가가 안정되어 있는 지금 분데스방크가 과감히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에서는 며칠전까지도 금리를 곧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
이었다.

오는 28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금리인하 전망은 20일 확 달라졌다.

2월중 독일의 총유동성(M3)이 12.1%나 급증한 것으로 발표되자 앞으로
상당기간 분데스방크가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진
것이다.

M3은 분데스방크가 금융정책을 결정할때 가장 중시하는 경제지표 가운데
하나로 금년도 억제목표는 4.0-7.0%이다.

M3이 7%를 넘지 않아야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는다는게
분데스방크의 입장이다.

그런데 금년 M3 목표는 첫달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1월 M3 증가율은 8.4%에 달했다.

물론 이 경제지표가 발표된 지난달 23일 이후에도 금리인하 기대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분데스방크가 1월 하순 환매채금리를 3.65%에서 3.30%로 내린뒤 기대심리가
이미 고조됐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M3 증가율이 두달째 목표권을 훨씬 웃돌자 금리인하 기대는
두드러지게 약해졌다.

독일 쥴리우스바에르은행의 게하르트 그레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분데스방크가 상반기중에는 금리를 현수준에서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메르즈방크의 이코노미스트 피터 피에쉬는 "독일 경제가 하반기중
회복세로 돌아서면 올해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다.

또 2월 M3 증가율이 금리인하 전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분데스방크가 과감히 금리를 내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사실 독일 공금리는 92년7월이후 15차례나 인하됐다.

그런데도 독일 산업계가 금리 추가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경기부양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정부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유럽 통화통합의 기본조건인 "국내총생산
(GDP)의 3%"를 초과했다.

통화통합 주도국인 독일로서는 경기가 침체된 국면에서도 재정을 긴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독일이 금리인하를 주저하면 다른 유럽국들은 금리를 과감하게 내리지
못하게 된다.

금리인하후 자국 화폐의 가치가 급락, 금융시장이 혼란해질수 있기 때문
이다.

금리인하가 주춤해지면 그만큼 경기회복이 늦어지고 유럽 각국이 재정적자
를 GDP의 3% 이내로 줄이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99년 1월1일로 예정된 유럽 통화통합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진다.

분데스방크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렸다"고 평가를 매우 싫어한다.

M3 증가율이 두달째 목표권을 이탈, 사실상 "인플레이션 경계경보"가
내려진 지금 분데스방크가 "권위 실추"를 무릎쓰고 금리를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국제금융인들의 시선은 오는 28일 열리는 분데스방크 이사회로 쏠리고
있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