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던 일본 화낙사의 CNC(전용 제어
시스템) 독점체제가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화낙 연합군"의 협공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전용 CNC를 대체할 PC-NC를 내놓고 화낙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CNC는 공작기계를 비롯한 각종 기계를 제어하는 핵심 장비이며 화낙은
CNC에 관한한 세계시장의 절반, 한국 일본시장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독점적 기업이다.

"기계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인 셈이다.

이같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 화낙은 지금까지 배짱을 부리며 장사를 했다.

CNC는 어느 회사 제품이건 타사 제품과 쉽게 호환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화낙의 CNC를 도입하고 나면 고객은 영낙없이 코뚜레가 꿰이고
만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월말 일본을 방문한 GM 기술자들은 "화낙의 팔을 비틀어 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들은 도요타자동차를 들러 화낙이 만든 CNC 대신 퍼스널컴퓨터에
장착토록 되어 있는 PC-NC를 사용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설득했다.

GM이 굳이 경쟁사인 도요타에게 자사의 성공전략을 알려준 것은 화낙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GM은 "반화낙 연합군"의 선봉장격이다.

94년에는 CNC의 개방화를 지향하는 "OMAC" 제어체계를 제창했다.

이에 대해 독일 지멘스와 미국의 신시네티 밀라크론, 앨런 브래들리 등
40개 업체가 지지입장을 밝혔다.

GM은 이 무렵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만드는 공작기계 등에 PC-NC를 장착
함으로써 제어시스템 도입비용을 7할 가량 절감했다.

GM의 성공은 경쟁사인 도요타로서는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다.

작년 9월 도요타기계를 비롯해 미쓰비시전기 일본IBM 도시바기계
야마자키마작 등 6개 업체가 "일본판 OMAC"인 "OSEC"라는 제어체계를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OSEC" 동참업체는 이제 16개 업체로 늘었다.

이 가운데 유난히 전의를 불사르고 있는 업체는 미쓰비시전기.

CNC에 관한한 화낙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물러야 했던 미쓰비시는 지금
이야말로 화낙을 타도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말 4축 제어용 PC-NC "맬더스매직50시리즈"를 내놓고 화낙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6개 업체 연합과는 별도로 공작기계업체 히타치세이끼는 컴퓨터업체
NEC와 손잡고 PC-NC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히타치는 작년 11월에는 NEC가 만든 PC-NC를 장착한 선반과 화낙이 만든
CNC를 장착한 선반을 한 모델씩 내놓고 수요가들의 반응을 떠보고 있다.

PC-NC의 두가지 대표적인 장점은 값이 싸고 호환성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NEC의 PC-NC "FFC-X2"의 경우 가격이 88만8천엔으로 전용 CNC
값의 절반에 불과하다.

서보모터 서보드라이브 등 주변기기나 PLC(프로그램식 논리제어장치)를
비롯한 공장자동화기기가 어느 회사 제품이든 문제없이 호환되기 때문에
납품업체를 선택할 수 있다.

GM과 같은 대고객들은 PC-NC를 도입, 자체기술로 공장을 자동화할 수도
있어 기밀누설을 무릎쓰고 화낙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어진다.

또 공장 전체를 자동화하기도 쉬워지며 상황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물론 PC-NC의 점유율은 아직 1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성능에서 전용 CNC에 뒤지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은 공작기계처럼 고정밀제어가 필요한 기계에는 값이 비싸더라도
전용 CNC를 장착하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PC-NC가 전용 CNC를 능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화낙으로서도 바로 이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화낙은 작년말 통산성 산하단체인 국제로보트.FA기술센터가 PC-NC 표준화를
추진하기 위해 결성한 "FA오픈시스템연구회"에 가담했다.

마침내 포위망을 돌파할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 셈이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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