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최대 매력은 그 속도에 있다.

항공료가 턱없이 비싼 유럽에서도 비행기는 "시간은 곧 돈"으로 여기는
비즈니스맨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도심의 교통체증이 날로 심해지면서 비행기의 이런 매력은 점차
반감되는 분위기다.

도심근교에 위치한 공항을 오가는 시간이 때로는 비행시간보다 더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TGV,독일의 ICE등 고속철도가 노선을 늘리며 세확대에
나서자 유럽 민항기업체들은 고객을 열차에 대거 빼앗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파리 런던 로마공항을 오가는 시간,
비행기 탑승수속등을 감안하면 시속 2백~2백50km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이용
하는게 시간이나 요금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다.

실례로 유럽의 황금노선중 하나인 런던~파리의 경우 기차이용객은 3시간만
에 목적지의 도심에 도착할수 있으나 비행기승객은 이보다 평균 5분정도를
더 소요해야 업무를 볼수 있다.

비행시간은 1시간 남짓하나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이동시간을 감안할때
기차가 오히려 빠른 셈이다.

그러나 기차료는 1등석 기준으로 1백65달러, 항공료는 가장 싼 표가
2백47달러나 된다.

파리~브뤼셀은 기차를 이용하면 2시간15분, 비행기는 2시간55분이 소요
된다.

요금은 항공료가 2백83달러인데 비해 기차값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99달러
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구간은 기차와 비행기가 모두 3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항공료는 기차요금보다 70%이상 비싸다.

게다가 유럽항공기는 잦은 파업과 연착으로 이용객들간에 불신감이 확산
되고 있다.

유럽항공협회 통계에 따르면 15분이상 연착한 여객기는 지난해 20.4%로
전년의 17%보다 오히려 급증했다.

그결과 지난 94년말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뚫린 이후 런던
파리 그리고 브뤼셀공항은 이용자가 감소되는 양상이다.

영국 민항기당국은 지난해 영국~파리간 승객이 15%정도 줄어든 것으로
집계했다.

런던~브뤼셀도 9%정도 감소했다.

프랑스에어는 파리~런던승객이 25% 격감했다며 울상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시속 2백~2백50km인 고속철도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조만간 시속
3백50km의 초고속철도가 등장할 전망이다.

또 유럽연합(EU)의 사회간접자본 확충계획에 따라 오는 2010년에는 유럽
대부분의 주요 대도시가 고속철도망으로 연결된다.

기차의 위력이 중.단거리에서 장거리로까지 확대된다는 얘기이다.

물론 여객기의 장점도 없지는 않다.

대륙간을 이동하는 장거리여행은 여객기가 여전히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열차는 노선변경에 한계가 있으나 여객기는 목적지 전환이 자유롭다"는
브리티시 에어웨이스사의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비행기는 노선이 그만큼 다양해 어느 도시로든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런던 히드로공항의 경우 이용객의 3분의1은 다른 지역을 가기 위해 일시
경유하는 승객인 것이 사실이다.

또 민항기업체들은 고객을 잡아두기 위해 공항과 도심간 초고속철도를
연결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10년전 프랑크푸르트와 뒤셀도르프를 연결하는 고속
철도를 구축했으며 금세기내 프랑크푸르트내 자사의 전용 고속철도도 건설할
방침이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공항도 도심과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갖고 있으며
네덜란드 스키폴공항도 관련 작업을 추진중이다.

도심을 오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유럽 항공업계의 이런 자구책도 고속철도의 위력 앞에서는 역부족인
듯 하다.

고객들은 값싸고 안전하면서도 운행시간이 단축되는 기차를 선호, 항공
업체들을 심각한 경영적자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5일자).